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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대리 Jan 14. 2023

‘비호감’에서 ‘그러려니’가 되기까지

어쩌다 일정이 취소되어 집에서 종일 유튜브를 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그래도 많이 변했다는 것.      


이제 막 교복을 입기 시작한 시절인 2000년대 중반, No.1 커밍아웃 연예인 그 분과 No.1 트랜스젠더 연예인 그분, 이렇게 둘 빼곤 말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방송 연예계에선 ‘여성스러운 남자’는 절대적으로 금기시되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부 연예인들이 재치와 예능감을 발휘해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지만 부정적 시선도 많았기에 대대적인 혁신이라 보긴 어려웠다.      



불과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아예 우리의 콘텐츠만을 다루는 유튜버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범상치 않은 하이텐션으로 TV며 유튜브며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는 연예인들이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그저 ‘약간 비호감인 이방인’으로 느껴졌던 그들이 이제는 그냥 쟤는 저런 인간인가 보다 하는 ‘주변인’으로 인정되고 있음이 체감된다.      


이는 ‘쟤 너무 이상하다... 혹시...?’라는 인식이 ‘그거 맞나 보지, 그러려니 해’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발전 속도가 빠른 대한민국이 유독 느려 이상했던 게 ‘깨지지 않는 고정관념’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 거북해하고 불편해하는 아주 딱딱한 바로 그것. 완전히 박살 나지는 않더라도 조금씩은 물렁해지고 있는 시대를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다.      



‘현실보다 더 지독한 현실’ 담은 작품 마주하기를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사극을 비롯하여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세부적으론 다르지만 하여간 큰 카테고리에선 다 같이 묶일 수 있는 우리의 특성을 담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즐겨보지는 않는 편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우리가 뭐가 어때서!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냐!”

“인생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야!‘를 외친다.     

좋다. 스스로를 꽁꽁 숨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10년 차 회사원인 내게 주는 대리만족의 쾌감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보통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밟힌 시루떡처럼 뭉개져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모두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나 사실 조금 특별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그 누구도 딱히 놀랄 것 같지 않은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를 제외하면, 고백(아웃팅 포함)은 우리의 삶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많은 작품들이 그 점을 간과하거나 스토리에 촘촘하게 엮지 않는 부분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완벽한 타인>처럼  남모르게 숨겨온 비밀을 친구들에게 들키자, "우리 엄마도 날 모르는데 너희가 날 어떻게 이해하겠냐"는 듯 무심하게 툭 던졌지만 울림은 메가톤 펀치였던 대사들도 있다. 내 뱃속으로 낳아 키운  부모,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직장동료,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했던 오랜 친구. 그들이 그간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했을 때 다가올,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들도 기대해 본다.



‘속마음’까지 바꾸는 건 개인의 선택    


“아니 P 씨는 왜 자꾸 남자가 여성 시점 소설을 써?”     


교수는 이 고리타분한 편견으로 늘 나를 힐난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까지 했다는 양반이 “남자는 당연히 남자소설을 써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는 것을 보고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심지어 누구보다 사고가 유연해야 하는 문학계에서 말이다.     

힘든 고백을 했을 때 “너 그거였어? 몰랐잖아. 역겹다.”라고 대놓고 비난할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 앞서 서술한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와 영화의 감초캐릭터들 덕분에 ‘내 주변에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세상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들도 우리를 그들과 똑같이 인식해 주기를” 원한다. 조금 서글픈 얘기지만 내 생각엔 ‘글쎄’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온당하게 누려야 할 제도를 누리지 못하고 차별받는다면 그건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법이며 제도며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뜯어고치는 건 합리적인 근거가 있지만, 복잡한 뇌회로인 소프트웨어까지 타인이 바꿀 수 있을까, 그럴 권리는 있는가. 앞서 이야기한 교수의 말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있는 걸 몰라서 저런 말을 했겠는가. 알고는 있지만 ‘당연하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기에’ 무의식적으로 저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상이 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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