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에 왜 퀴어들이 환장하는가. 찰진 대사와 기갈도 한 몫하지만, 사실 세 악녀의 서열과 인생이 30대 중후반 이후의 우리의 삶과도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박연진(임지연 분)이 최혜정(차주영 분)에게 “우정이 우정만으로 되냐”며 비아냥대는 장면이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말 매우 친한 극소수 일부를 제외하면, 20대까지는 이년아 저년아로 깔깔대며 대충 뭉개던 인간관계가 30대 중반을 넘어가며 “내가 얘를 왜 만나지?”라는 고민하는 시점이 온다.
이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개개인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묶을 순 없다. “골프 라운딩 갈 수 있는 급 되는 애가 별로 없어서” “연극 뮤지컬 오케스트라 공연 보는 거 좋아하는데 취미가 잘 맞아서” “그냥 얘랑 수다 떠는 게 제일 재밌어서”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20대 때 크게 티 나지 않았던 “경제력”이라는 부분이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자가용, 해외여행, 호캉스. “쟤는 돈이 많으니 맘대로 할 수 있고, 나는 돈이 없으니 그거까진 못하는 상황”들이 서서히 많아지며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그게 내가 번 돈이든, 부모 돈이든.
여유가 되는 사람은 계속 그 행위를 하고 싶어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같이 뭘 하고 싶어도 돈이 없으니 못하고. 그렇다고 부자 친구가 돈을 대 줄 것도 아니고. 자존심 구겨지니 부탁하기도 싫고. 썩 듣기 좋지 않은 “끼리끼리 논다”는 표현은, 일부러 계급을 나누고 사이를 박살내고자 누군가 고의로 만든 언어가 아닌, 그냥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이 자연스레 표출된 결과다.
최혜정처럼 어느 정도 고연봉 대열에 합류하며 ‘높은 근로소득세’를 내는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호캉스와 해외여행 사진을 가득 게재하며 본인의 ‘부’를 종종 과시하기도 한다. 이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영심일 수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이 정도 사치는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대견함도 담겨 있는 듯하다.
그녀 위에 ‘종합소득세’를 내는 이사라(김히어라 분)와 박연진이 있듯, 우리도 극소수의 찐부자들이 있으며 이는 보통 “고가의 아파트”로 상징된다. 근로소득세 내는 사람들이 사진 보정하기 바쁠 때, 이들은 한강뷰의 초고층 아파트에서 지인 소수와 수십만 원짜리 와인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급, 수준차, 경제력을 운운하는 이들을 픽 하고 비웃기라도 하듯.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부자였다고.”
그럼 30대 중반 되면 그저 돈 많은 사람들만 살아남는가. 없으면 다 죽어야 하나. 최혜정이 박연진과 이사라의 돈을 부러워하듯, 박연진도 최혜정의 미모와 가슴을 질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돈도 많으면서 왜 굳이 시샘하는지, 설명이 더 필요한가.
늙어서도 예쁘지만 경제력은 떨어지는 퀴어들의 논리는 늘 한결같다. 쟤들이 수백만 원짜리 옷 걸치면 뭐 해. 골프 칠 돈 있으면 뭐 해. 안 예쁜데. 인기가 없는데. 같이 잘 남자가 없는데.
일단 저 말은 “돈 많은 사람치고 이쁜 사람 없다”는 퀴어 속설을 바탕으로 한 근거 없는 이분법적인 비난이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만 “날 위해서 지갑 안 열면” 상대방의 경제력은 딱히 매력적인 요소가 아닌 건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겨들을 부분도 있다.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람을, 그저 돈 많다고 좋아해 본 기억이 있는가. 그 돈 나한테 안 쓰면 말짱 꽝인 것을.
돈이 많지만 예쁘지 않은 퀴어. 돈은 없지만 예쁜 퀴어. 둘의 공통점은 그저 늙어가고 있다는 것뿐. 이들은 자신의 약점은 숨긴 채 상대의 아픈 손가락을 향해 칼을 겨눈다. 서로 더 나쁜 년이라고 멱살을 잡고 벼랑 끝까지 몰고갈 앞으로의 연진, 사라, 혜정의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