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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공비행 Aug 16. 2023

그 당시 '싱가축구'에는 말이죠.

오락 게임 '98 테크모 월드컵'의 추억과 함께.


준비물 : 약간의 100원짜리 동전들과, 끝까지 가보겠다는 어린 아이의 패기. 혹시나 6학년 형들이 내 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 


장소 : 초등학교 앞 작은 문방구.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대략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나 최종 스테이지까지 가지 못할까 걱정을 하면서도 스틱을 잡은 손은 끊임없이 움직이곤 하였습니다. 어떻게든 게임을 끝내고, 친구들 사이에서 "우와, 쟤 봐!" 같은 소리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초등학교 시절을 거쳤던 당신들이 기억하는 게임, 추억의 축구 게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추억의 축구 오락 게임 '98 테크모 월드컵'에서,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썬더일레븐'을 연상시키는 초능력과 같은 기술들을 사용하며, 득점을 기록하는 선수들의 스킬에는 '바나나 슛'과 '싱가'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싱가'의 경우, 브라질 선수들이 헛다리 개인기를 사용할 때, 다리와 공 주변으로 스킬 이펙트가 펼쳐짐에 따라 들리는 효과음입니다. 이 경쾌한 소리와 강력한 기술의 효과는 하나의 큰 쾌감으로 결합되곤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게임을 '싱가 축구'라고 많은 사람들이 불렀죠. 여전히 그 이름으로 기억하고 부르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여기서의 게임 기술 '싱가'는 헛다리 짚기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며, 축구에서는 꽤나 쉽게 볼 수 있는 기술입니다. 크게는 프로들의 무대에서도 그렇고, 동네 어린 아이들의 경기에서도 이 기술을 흉내내는 친구들이 참 많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step-over 또는 scissors 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움직임(movement)는 그만큼 축구에서 큰 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게임 내에서의 헛다리 기술을 '시저스' 와 같이 부른다면 전혀 틀리지 않을텐데요. 허나 사람들은 이 기술을 '싱가'라고 부르고, 게임 자체를 '싱가 축구'라 기억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검색 포탈인 '네이버'를 포함하여 심지어 구글에서의 검색을 시도하였을 때에도 사람들의 이 기술 특성에 대한 인식은 '시저스', 즉 헛다리로 고정되어 있더군요. 허나 그 발음에 있어서 기계음의 뭉개지는 소리, 발음의 특이성으로 인하여 '싱가'로 들리게 되었다는 것, '싱가'로 부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것이 옳은 해석일까요? 전혀 쓸 데도 없고 무의미한 논의임은 알고 있지만, 순수한 탐구의 재미 그리고 추억의 게임에 대한 나름의 존중과 이해 아래에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예전의 게시물에서도 언급한 브라질의 정신이자 문화인 징가(Ginga)는 그들의 특정 기술만이 아닌 몸짓 모두에 포함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하였죠. 이러한 Ginga는 위에 언급된 게임의 스킬인 '싱가'와 발음 면에서 '매우' 유사합니다. 또한 헛다리라는 축구의 개인기는 징가(ginga)가 내포하는 것과 일치할 뿐더러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축구의 기술을 넘어 브라질인의 몸짓과 정신을 고려하면, 결국 '시저스'도 '징가'에 들어가는 하위 요소일 뿐이지요. 그 의미를 고려할 때 이 기술의 정확한 명칭이 '시저스'가 아닌 '싱가'라 불리는 것은 나름의 설득력과 연관성을 보이는 듯 합니다.


또한 언어에서도, 이러한 징가는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특성 상 포르투갈 어로 발음이 되는데, 이때의 언어적 성격을 고려해보자면, 영어 알파벳 g는 명확한 'ㅈ'의 발음이 나지 않습니다. gi의 경우 '지', '시' 에서 더 나아가 '히'까지의 발음도 지닐 수 있습니다. Z의 경우 i와 합쳐 'ㅅ-' 발음으로 바뀌기도 하기에, s로 봐도 무방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ginga는 싱가와 그 자체로 발음이 유사할 뿐더러 임의로 이 발음을 변형하여 zi-와 유사한 'singa'라고 하자면 위 게임의 스킬인 '싱가'와 일치한 사운드가 되죠. 발음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 두 번째 근거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기계음이거나 부정확한 발음이라 할지라도 '시저스'가 '싱가'로 바뀌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같은데요. 모두가 '싱가' 그리고 '싱가 축구'라고 말하듯, 이 기술의 정확한 사운드는 'ginga'라고 생각합니다. 그 단어 그대로, 우리가 '싱가'라고 듣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게임사의 의도가 있습니다. '2002 테크모 월드컵' (후속작)의 경우 새롭게 등장한 기술인 '예루살렘 이펙트'나 프랑스 대표팀의 기술에서 '에펠탑'이 함께 구현되는 것을 보면, 각 국가의 스킬 사용이나 플레이에 있어 역사나 고유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데요. 이 부분에서도 '브라질=싱가'라는 공식은 맞아떨어집니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발음의 문제, 기술 명명의 문제가 아니라 게이머들의 잘못된 이해와 들리는 것에만 의존한 단어 사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98 테크모 월드컵'의 대표적 기술 '싱가'는 말 그대로 ginga일 뿐, 그걸 받아들이는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죠. 


기술에 내포된 의미의 특성과 발음의 특성, 타 기술들과의 비교 및 검토를 통한 게임사의 의도 이해를 바탕으로 하였을 때에 '싱가 축구'의 정확한 의미와 'Ginga'의 게임 내 구현을 살펴보았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께서 기억하실, 추억의 오락실 축구 게임인 '싱가 축구'. 동네의 형님들 눈치도 보고, 가족의 눈치도 보며, 친구들과 신나게 동전을 넣고 게임하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실 겁니다. 


그러한 추억의 게임, 오랜만에 한 번 떠올리면서 싱가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기억에 묻힌 과거라 할지라도, 설령 '싱가축구'에 대한 해석이 무슨 의미가 있냐 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간만에 "싱가 축구 알지" 또는 '아, 참으로 재밌었지." 정도라도 가벼운 추억의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브라질 대표팀, 바나나 슛, 싱가와 슈퍼 세이브가 난무하던 그 시기와 함께. 싱가 축구, 98 테크모 월드컵 게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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