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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May 24. 2024

인간은 언제 모욕감을 느끼는가

모욕감, 너는 나에게 독기를 줬어

일상 속에서 사람은 심장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 그러나 가끔 심장이 가슴속에 있다는 걸 크게 의식하는 때가 있다.


가슴 아픈 이별이라는 말은 너무나 상투적이지만, 나 역시 이별을 했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진짜로 느꼈다. 하루종일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고 심장이 내 안에 있는 것이 고통스러운 정도였다.


그때만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가슴팍이 하루 종일 묵직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가슴 안에 심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 날이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모욕감이었다.

이 경험으로 인간이 언제 모욕감을 느끼는지를 조금 깨달은 것 같다.


나에겐 소중한 것이, 외부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때.

누군가가 그것을 형편없이 취급하거나 기계적으로 취급했을 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 외부에서는 'ONE OF THEM'일 수밖에 없는 그 '간극'.

그 간극을 느낄 때 모욕감과 함께 가슴이 찢어질 정도의 아픔을 느끼는 것 같다.




작게, 그것은 나에게 글이다.


물론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글을 쓸 줄 아는 것도 아니기에 내 글모음을 기계적으로 다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고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로 성의 없이 남의 콘텐츠를 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글판이라는 것을 떠나 그냥 그 정도로 성의 없이 일을 하면 안 된다 그 어떤 일이라도 말이다.   


조금 멀리간 비유지만, 크게 보면 가족 이야기까지 할 수 있다.


콜센터나 공공기관 민원 창구 같은 곳에 가면 쉽게 '상담 직원은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글귀가 붙어져 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스러운 대상일 수 있다. 이 깨달음은 정말 중요하다.


그 깨달음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소중한 대상을 함부로 취급한다. 그래서 벌어진 비극들은 뉴스에서 너무나 많이 다뤄진다. 물론 기계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도 있겠지만 정도를 넘지는 많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 집 앞에는 종종 프리마켓이 열린다. 프리마켓의 특성상 조그맣고 하찮은 물건들이 나열되어 있다. '저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수제 물품들도 있다. 나 역시 '사람들이 별로 구매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저렇게 매번 주말을 반납하면서 프리마켓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말만 반납하는 게 아니라 저걸 만드느라 걸린 시간도 상당할 텐데'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열린 프리마켓을 봤다. 가슴이 꽉 막힌 채 작은 물품들을 보면서 평소와 다른 생각을 했다.


저 사람들에게 이 물품들, 나에게는 글과 같은 것이구나.


많은 이들은 내가 글 쓰는 모습을, 내가 안 팔리는 프리마켓의 작은 팔찌를 파는 상인을 보듯 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관점으로 올망졸망 늘어져 있는 팔찌들을 바라보니 울적해졌다. 그리고 그 팔찌들을 앞으로는 이전처럼 바라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돌고 돌아 이렇기에, 나는 사람이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이 만든 것을 깔보는 일은 너무도 쉽다. 깔보기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감정 없이 창작물을 대하기란 너무나 쉽다.  


보통 내 것을 만들면 보잘것 없어도 소중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만듦의 대상은 작게는 글이나 팔찌부터 가족까지 포함이 된다. 누군가 평가하기엔 한없이 모자라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갈아 넣은 것이고 이것이 없으면 내 삶이 힘들어질 정도로, 나아가 인생이 무너질 정도로 애정이 깃든 대상들이다.


나의 소중한 것들을 기계적으로 취급하는 이들을 보면서, 약간의 독기를 가지게 된다.


어떤 작가는 자신이 왜 쓰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릴 적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라는 항목을 언급한다. 나 역시 조금은 이러한 마음이 깃들었다.


글 때문에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자주 느끼는 나지만, 또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이 쓰는 일이다. 아마 앞으로도 쓰기를 그만둘 일은 없지 않을까.


모욕감, 너는 나에게 독기를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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