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정 <읽고 쓰고 버린다> 리뷰
<읽고 쓰고 버린다>, 이 책은 이제는 축구 감독 커리어 외에도 '자녀 교육' 카테고리에서 매우 유명인이 된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의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이 손웅정 자신의 이야기와 손흥민을 키우는 이야기가 주였다면 이 책은 김민정 시인과의 대담이 주를 이룬다. 개인적으로 손웅정 감독을 너무 추켜세우는 대담 스타일이 거부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지만, 대담 형식이라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어서 쭉쭉 넘어갔다.
이 책을 읽고 손웅정 감독에 대한 호감이 생겨서, 그의 첫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도 완독 할 수 있었다. 사실 그의 첫 책은 그에 대한 호감이 없으면 쭉 읽어나가기 힘든 자기 계발서이기도 해서, 두 번째 책의 대담 형식이 도움이 되었다.
두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두 번째 책의 제목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가 큰 의미를 담은 제목이라 느껴졌다.
책의 제목이 너무 직관적이라 조금 촌스러운(?) 느낌도 들 수 있는데, 책을 다 읽으니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서술해 보겠다.
저는 읽고 쓰고 난 다음에 책은 바로 다 버려요. 사실 버리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단호한 결단에서 비롯하는 거니까요.
근데 그건 결국 내 책임이거든요. 책은 버리지만 난 이미 책에서 취할 핵심은 다 가진 뒤니까 망설임도 없고 여한도 없는 거죠.
책을 산 건 난데 어느 순간 책이 나를 소유하고 있더라고요. 내 소중한 공간을 다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더라고요.
손웅정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이 부분에서 손웅정 책을 두 개 다 읽은 독자로서, 덧붙여 해석해 보자면, 손웅정은 자녀 교육에서든 삶에서든 '허세'를 매우 싫어한다.
특히 자녀교육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자식의 시간을 낭비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 비판한다. 이렇게 책을 쌓아두지 않고 읽고 메모를 하고 버리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의 담백함, 즉 허세를 싫어하는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사람이 지혜가 필요해서 책을 보는 것인데 책 보는 걸 자랑하다 보면, 집에 책이 쌓이고 지저분해지며 책을 안 읽어도 책을 읽은 기분이 든다. 손웅정은 이런 허세나 제대로 되지 않고 기분만 느끼는 것을 매우 경계하는 사람이다.
자녀 교육에서도 예를 들어 어떤 학원에 다닌다, 우리 애가 뭘 한다 이런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취해 기본기를 쌓을 시간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진짜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게 부모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에 집중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남의 이야기나 허세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고 버리는 것도 바로 이런 생각에서 인 것 같아서, 이 문장이 책의 제목이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런 문장들도 보자.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드리블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드리블이 뭐냐. 드리블은 여기에서 여기로 볼을 운반하는 거, 그거지, 사람 젖혀가며 온갖 지랄하는 거, 그거 드리블 아니에요.
“야, 지랄하지 말고 빨리 줘.” 그게 내 축구예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축구를 잘한다고 생각하며 공을 가지고 일명 '갖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한다. 그렇게 자유자재로 드리블하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축구를 잘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그가 보기엔 '지랄'일뿐인 것이다.
그러니까 지랄하지 말고 기본이나 갖춰. 그게 손웅정의 자세다.
이런 그이기에 그가 요새 '자녀 교육'의 대가로 각광받는 것일 테다. 그는 허세나 자랑을 위한 자녀교육이 아니라 기본기를 강조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부모가 '도울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애가 나가 사고라도 칠까, 혹시라도 나쁜 애들하고 어울릴까, 하는 부모의 불안이 아이한테 고스란히 전해질 때 역반응이 나는 거예요.
비겁하면 안전할 수 있어요. 배가 항구에 묶여 있을 때 안도가 되는 것처럼요.
그런데 애 말고 내 안심만을 생각할 거냐고요.
애를 위한다고 시작한 일이 나를 위함으로 귀결이 된다면 그건 타깃이 엇나간 일이잖아요.
애들 교육은요, 저는 무조건 역지사지로 접근했어요. 나 어렸을 때 생각을 가장 먼저 하고, 제 즉흥적인 지금의 감정을 가장 뒤에 두고요.
혼자 무언가에 빠져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재능의 증거다. 그럴수록 아이에게 더더욱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과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의 책 두 권을 읽고 보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축구, 청소, 책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삶은 이것 외에 없는 것 같다. 조금 더 해보면 축구 유소년 키우기 정도인데 이것 역시 축구에 들어가는 카테고리이기에 단순하게 가족, 축구, 청소, 책. 이렇게 가 그의 삶 전부다.
축구에도 제대로 미친 사람이지만 청소에도 제대로 미쳐있다. 그는 청소 등 기본 생활, 즉 자기 관리가 모든 것의 기본이라고 계속해서 강조한다.
다른 건 볼 것도 없어요. 우리의 생활을 한번 들여다보자고요.
화장실 변기는 어떻게 쓰나. 침대 이부자리는 어떻게 쓰나. 식탁 유리는 어떻게 쓰나. 책상 서랍은 어떻게 쓰나. 자동차 트렁크는 어떻게 쓰나. 그렇다면 사무실 자리는 또 어떻게 쓰나. 매일같이 쓰는 생활공간일 텐데 저마다 그 자리의 상태는 지금 어떠한가. 항상 청결할까요.
우리가 깨끗한 것은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스스로 그렇게 만드는 건 또 아주 귀찮아한단 말이죠.
그는 자신과 함께 축구아카데미에서 일할 사람을 뽑을 때도 그 사람의 차 뒷좌석과 트렁크를 본다고 한다. 차 뒷좌석과 트렁크가 잘 정돈되어 있지 않고 지저분하다면 그에게 합격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청소에 미친 사람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는 좋은 대목 또 추천.
제 침대가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거든요. 그래야 그 양쪽 면을 다 청소할 수가 있잖아요.
그래 두면 침대와 벽 사이에 딱 제 한 몸 들어가 뉠 공간이 생기는데 그 모양새가 딱 관 같더라고요.
저는 하루에 한 번씩 거기 딱 누워봐요. 그러고는 하루를 돌아봐요. 오늘 하루로 삶이 끝난다고 했을 때 무엇이 가장 후회되는 일일까. 그렇게 해서라도 후회를 챙기는 거죠.
큰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책상 서랍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청소에 미친 그의 루틴은 이렇다.
일단 새벽에 일어나면 집 환기부터 싹 시키죠. 돌돌이로 이부자리며 베개 위를 밀어대는 것부터가 하루의 시작이거든요.
네, 저 양말도 돌돌이로 먼지 다 떼요. 화장실 변기도 뿌리는 락스로 하루 두 번 이상 닦거든요. 네, 저 세면대도 손 씻을 때마다 수세미로 다 닦아요. 기본적으로 청소와 정리 정돈에 두서너 시간? 꼬박 하죠. 매일같이 반복하죠.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집에 물건이 없어야 하는 거예요. 물건이 많으면 청소하는 시간도 길어지잖아요. 뭐 치우고 자시고 할 거 없이 그냥 닦으면 되도록 거실 의자도요, 장식으로 파인 구멍이나 화려한 문양이 나 있는 건 아예 고르지를 않아요. 왜냐, 먼지 많이 끼니까요.(웃음)
이렇게 어떤 삶이든 기본기를 강조하는 그이기에, 자기 관리나 자녀 교육 카테고리에 맞는 말들이 많다.
애들한테 휴대폰이 문제라면서, 그거 하나도 타협하지 못하면서, 부모들부터가 죄다 거기 빠져 정신없으면서, 대체 뭘 어떻게 고친다는 거예요.
안 주면 찡찡거리니까 또 줘. 여기서부터 벌써 부모는 진 거예요.
아카데미 아이들과 운동을 하다 보니까 요즘 애들이요, 원체 집중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초점이 모여야 태양이 종이를 태울 수 있는 거잖아요. 초점이 안 모였는데 어떻게 햇볕이 종이를 태우겠냐고요.
그렇다면 이 몰입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단순함이거든요. 단순화시킬 수 없을 때까지 단순화시키라고, 이 단순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국 버림이거든요. 이 버림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책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자기 계발 서적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삶이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투쟁의 나날 아니겠어요? 피 터지게 싸워봤자 사람 앞에 완전이라든지 완성이라든지 이런 수식어 붙일 수 있냐고요. 영원히 그건 못 붙이는 일이잖아요.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고, 완성된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계속 청소하자는 거고, 고민하자는 거고, 운동하자는 거고, 책 읽자는 거예요. 성공 말고 가치를 좇자는 거예요.
아 열받아, 하는 순간 그 독소를 내가 나한테 붓는 거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그 독소가 걔한테 안 가. 나한테 와.
걔 머리카락 한 올도 상하게 할 수 없어. 그런데 잘못한 것도 없이 공연히 상대에게 왜 내 생각의 지배권을 넘겨주냐고요.
누군가는 제대로 된 독서를 하려면 자기 계발 서적을 읽지 말라고 한다. 자기 계발 서적을 비판하는 논리는 비슷하다.
자기 계발서가 세상의 시스템이 잘못된 것은 못 보게 막고, 많은 일을 개인의 잘못 혹은 게으름으로 돌린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이 세상은 부익부 빈익빈이고,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성공을 거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시스템 비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시스템 비판만 읽다 보니 나는 나의 하루가 쓸모없어 보였고, 무기력하게 됐다.
그래서 이 시스템을 내가 당장 바꿀 수 있나? 같은 거대한 질문들은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시스템을 비판하면서 이것을 바꾸려고 정치인이 되는 것만이 정답인가? 짱돌을 들면 내 앞의 생이 해결되나? 물론 짱돌 들어 문제 해결한 사람도 있겠고, 국회로 들어가 좋은 법을 만든 국회의원도 있겠고, 사회운동을 하면서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나는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나가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싶은 소시민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동기부여를 해주는 글이나 콘텐츠들을 좋아한다.
또 다른 자기 계발서 비판은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데일 카네기나 군주론의 반복이라는 논리다.
내가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카네기나 군주론의 메시지가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고유한 어떤 사람의 카네기이고 군주론이다. 고유한 이야기는 같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은 무조건 성장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 계발서 읽기를 좋아한다.
손웅정의 책 중에는 이런 문구들을 생각해 보자.
좋은 시범은 백 번의 설명보다 낫다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와 더 많이 뛰는 일이었어요.
과음하지 말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말수를 줄이고, 목소리 낮추고, 나누고, 베풀고, 무엇보다 또 항상 주변 정리하고, 내 몸 청결히 하고. 저는 향수도 그래서 잘 골라 써요.
너무 뻔한 자기 계발서 이야기 같나? 그런데 아기 키우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첫 번째 말부터 말이다. 아이랑 같이 놀아줄 때, 아이보다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른 책에도 나와있지만 손웅정 감독은 두 아이들을 훈련시킬 때 자신이 30분~1시간 먼저 운동장에 나와 운동장에 소금 뿌리고, 넘어지면 걸릴 조각 없는지 쓸었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터 가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사람이 많고, 간다고 해도 놀이터에서 앉아서 핸드폰 보는 사람이 반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나갈 놀이터 먼저 나가서 청소한다고? 그리고 내가 몸을 더 쓴다고? 이거부터 되는 사람이 얼마 없는 것이다.
이런 말이 다 필요 없다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말 하나 머리에 넣어두면 10번 중 1번은 아이와 함께 더 뛸 것 같다.
자기 계발서 읽지 말라는 말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고 끌리는 책 읽으면 된다.
이런 자기 계발서가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
이렇게 빡세게 사는 것 종용하다가, 스스로 혹사시키고 번아웃 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특이한 게 그가 자신을 혹사시키다가 부상당해 일찍 은퇴한 축구 선수였기에, 아이들을 혹사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18살 이전에는 슈팅 연습도 무리하게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근육이 약한 아이들에게 슈팅 연습을 무리하게 시키면 무릎이 나갈 수 있고 부상이 잦아지면 아이들은 꿈도 피워보기 전에 스러진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전성기를 누리려면 아이가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때 빡세게 시켜야 한다고 한다. 빡셀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아침저녁 운동량이 너무 과했다는 것도요.
이게 다 제가 축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해봤고, 또 해보다가 안 된다는 걸 결국은 알게 된 일이잖아요.
이를 두고 누구는 실수라 말할 수 있고, 또 실패했다고도 하겠지만 이 경험은요, 지도자로 제게 내린 축복이고 제게 주신 선물이에요. 이 시행착오 없었으면 저요, 분명 애들 잘못 가르쳤을 거예요.
우리 아이들 그래서 제가 혹사 안 시키는 거예요. 시행착오를 잘 키워 보내잖아요? 그럼 그다음에 지혜가 와요.
간혹 우리 아카데미 애들이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 나가 숙박을 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럼 제가 코치 선생님들한테 가장 먼저 준비시키는 일이 뭐냐면요, 그 숙박 시설 주인한테 비상 탈출구부터 확보해 놓으라는 거예요. 그런 다음 애들에게 직접 그 비상구를 안내하고, 위험시 그 통로로 빠져나오면 된다는 걸 인지시키라는 거예요.
거기서도 나는 기본을 찾는 거예요. 그 기본부터 찾아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행할 기본은 안전 수칙을 숙지하고 이행하는 일이잖아요.
리더는 사실 교육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고, 잠재적으로 그런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업 같아요.
순간적인 판단력이라든지, 마음가짐의 올곧음이라든지, 섬김과 베풂의 넉넉함이라든지.
하여간에 리더는요, 조직원들이 싼 똥을 치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해요.
누가 잘못을 했든지 간에,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일단 냄새나는 걸 치워서 조직원들의 공기부터 쾌적하게 하는 사람.
뭐니 뭐니 해도 리더는 이런 모든 부담을 짊어진 책임감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거예요.
그는 아이들에게 이런 꼼꼼한 감독이고, 리더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한다고 한다.
일상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잖아요. 그게 살아 있음의 증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미리미리 책을 읽어두면 좋을 것이, 작가들한테 빌린 지혜가 쌓여 있을수록 그때그때 융통하기가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난 이런 자기 계발서를 읽다 보면 '나는 꼰대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게 진짜 꼰대여야 된다. 그는 깐깐하고 꼼꼼하고 청결하다. 리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면 이런 '꼰대 어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런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