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서 영혼을 지켜내면서 독하기까지 하다니, 난 못해
한강 작가의 노벨상 이후 소설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실 소설이나 시를 읽지 않은지 오래다. 과거에도 한강 작가의 책들을 읽기에 실패했었다. 한강 작가 역시 자신의 책을 쓰면서 괴로워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이라 말씀하셨는데, 독자 역시 읽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작가는 쉽게 그만둘 수 없었겠지만 독자는 쉽게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겠지.
작가의 의도 중 하나가 불편한 세상을 직시하게 만든다거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세상의 고통을 직설적이고 문학적인 문장으로 보여주겠다, 혹은 기록해야겠다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개인의 기준에서 이미 참을 수 없는 말들이나 현실로 가득 차있다.
책을 통해 더 큰 괴로움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들을 견디면서 읽어야 하는 건지, 그만큼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적어졌다고 느낀다.
이전에는 '이 험한 세상, 그나마 살아갈 만하게 살아간다면, 나보다 더 괴로움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라도 참아내야지!'같은 생각으로 꾸역꾸역 읽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10분 단위로 할 일들이 쌓여서 인지 소설이나 시 읽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꼭 괴로운 이야기들이 아니더라도 문학적인 문장 역시 삶과 맘의 여유가 있어야 들어오는 것 같다.
수상 이후 사람들이 공유하는 짧은 글귀들에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뭔가 답답하고 나아가야 할 것 같은 세상에서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 더 침잠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감각을 즐겼던 적도 있었지만 할 일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침잠을 즐기다보면 망가진 하루가 쌓일 뿐이다. (고 생각하는 사람이 돼버렸다.)
기사 중에서도 문학적인 문체를 쓰인 르포나 비평을 잘 읽지 못한다. 상사가 나어떤 기사를 추천해 주어서 읽어야 할 때가 아니면 잘 읽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 그 문장들은 (이제는 혹은 아직은) 내 삶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교조적인 느낌이 든다. 혹은 남의 자의식이 실질적으로 느껴져서 소름이 돋기도 한다. ‘저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문장이라니..’라면서 읽고 싶지 않기도 하다.
이 정도가 평소에 하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 문장에서 말했듯 한강 작가의 수상 이후 평소보다 소설이나 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한 생각은 무엇이냐면, 나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생각에서 머물고 소설이나 시를 읽지 않고, 쓰지도 않을 것이다.
소설가들이나 시인들이 큰 상을 받을 때쯤이 되어야 ‘많은 이들이 10대, 20대에 느꼈던 그 감성과 열정이나 남을 위한 연민’등을 시간이 지나서도 유지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20대가 지나서 독립을 하고, 집을 사야 하고, 청소는 매일 쌓여있고, 매일 반찬을 뭐 할지 생각하고, 화장실 유리는 뭘로 닦아야 할지 유튜브에 검색을 하고, 아기 간식은 뭘 만들어줘야 영양적으로도 좋고 잘 먹을지 등을 생각하는 삶인데도 소설을 쓸 생각을 유지하다니. 그것 자체가 너무 대단해 보인다.
어쩌면 그 고군분투에는 포상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이 험한 세상에 그 순수한 영혼을 잘 지켜낸 것을 칭찬합니다. 같은 느낌.
순수한 영혼을 지켜냈다고 해서 모두가 포상을 받는 건 당연히 아니다. 순수한 영혼을 지켜내면서도 성실하게 문장을 벼리는 일을 동시에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서 독하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가들은 세상에 대한 애정이나 연민을 가지고서도 자신만의 관점을 비웃음으로부터 지켜내야 하고, 그 영혼을 유지하면서 성실하게 좋은 문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모순된 지점을 지켜나가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행위들이다.
그렇기에 문학이라는 장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문학과 시라는, 또 나아가 그에 상을 주는 시스템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두 번째 생각이었다. 나 같은 인간이 너무 많고 나 같은 인간이 되기는 너무도 쉬운데, 나 같은 인간도 문학을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게 이런 큰 상의 효용이고 그동안 묵묵히 글을 써온 사람들을 비추는 계기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세 번째 생각은 이렇게 문학적인 글들을 읽기 힘들어하는 내가 쓰는 글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다.
문학이나 시들에 비하면 내 글은 너무도 투박하고 건조하다. 종종 내 글을 읽어주는 주변인들도 ‘네 글은 가끔 재밌긴 한데 막 엄청 잘 쓰거나 한 것 같진 않다’는 감상평을 남기고 나도 그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자주 투박한 사람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나같이 투박한 사람은 글을 왜 쓰는 걸까? 글이라는 것은 문학적이나 시적이어야만 할까?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내가 무슨 대단한 상을 타보겠다거나 세상에서 잊히면 안 되는 일을 문학적으로 기록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포부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투박한 글의 쓰임은 어디에 있는지 자주 궁금하다.
그럼에도 10년 가까이 어쨌든 노트북을 두들기면서 글자를 남겨서 밥을 먹고살고, 취미도 그 비슷한 것이고 거기에 긴 시간 재미를 느끼면서 살았기에, 글쓰기의 세상이란 투박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개구멍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