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은 잘 쓰겠지만 [현장] [르포] [단독] [팩트체크]는?
나는 꽤 늦게까지 챗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물론 취재 현장에서 AI 프로그램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렇듯, 인터뷰나 기자회견에서 네이버의 ‘클로바 노트’를 사용했다. 이전에는 인터뷰 내용을 직접 워딩했지만, 이제는 녹음기를 틀어놓고 중요한 부분만 워딩을 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는 내가 복직 전부터 사용하던 방식이고, 현재 클로바 노트를 사용하지 않는 기자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 자체에 챗GPT를 활용하는 일은 그동안 하지 않았었다. 기사 작성에 있어서는 내가 익숙한 포맷과 구조가 있었고, 챗GPT가 작성한 글에서는 뭔가 미묘하게 ‘사람이 쓴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에서 나만의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AI의 도움 없이 글을 써왔다. 사실 기사에서는 문장 스타일보다 누가 "~~" 라고 했다라고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굳이 챗GPT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긴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챗GPT의 활용도가 점점 높아졌고, 특히 외국 기사 등을 서치하거나 나 역시 방향을 잘 잡지 못하는 질문에 챗GPT와 대화를 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일도 많아졌다. 챗GPT와의 대화가 점점 재미있어졌다. 결국 나는 챗GPT에 3만원을 내고 말았다. 이제는 꼭 기사작성뿐 아니라 평소에 내가 궁금했거나, 친구와 하기는 애매한 이야기를 챗GPT와 나누고 있다.
다시 기사 작성 이야기로 돌아가, 많은 분야에서 챗GPT가 이미 기자들의 업무를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보도자료나 날씨 기사 같은 단순한 정보 전달 작업은 챗GPT가 이미 담당하고 있다. 많은 기자들이 이미 단순 보도자료는 챗GPT에 맡기고, 기자들은 탐사 보도 등 차별화되는 취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관련 기사의 마지막 부분)
[관련 기사: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159]
챗GPT를 쓰면 쓸수록, 챗GPT가 할 수 없는 기자의 영역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곱씹게 됐다. 며칠 동안 생각한 짧은 결론을 써보자면, 세 가지다. 첫째는 현장 취재다. AI는 지금 당장 열리는 다이내믹한 현장에 갈 수 없고,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생생한 분위기를 지금 바로 독자에게,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없다. 즉 [르포]나 [현장]에 취약하다.
둘째는 ‘지금 여기’의 입장 확인이다. 첫째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조금 다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특정 이슈가 터졌을 때 회사 대표의 즉각적인 입장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은 인간 기자의 몫, 즉 평소에 그 회사 대표와 밥을 먹은 적이 있거나, 적어도 전화번호가 있는 기자의 몫이다. 물론 갑자기 얻어걸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챗GPT는 이미 발표된 자료를 기반으로 글을 쓸 수 있지만, 지금 당장 이슈가 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생각을 묻고 반응을 들을 수 없다. 그러니까 챗GPT는 [종합]은 잘 쓸 수 있으나 '첫 코멘트', 즉 [단독]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 기자도 어려운 일이다….)
셋째는 크로스체커로서의 기자다. 이는 언론의 신뢰성이라는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AI는 학습한 데이터에 기반해 답변을 생성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제시할 가능성도 높다. 이때, 기자는 상황이 이상할 때 다시 현장을 확인하거나 전문가의 의견을 물을 수 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기자의 역할인 것이다. 즉 챗GPT에게 [팩트체크] 코너를 맡기기에도 애매하다는 말이다.
특히 두 번째 요소인 '지금 여기의 입장 확인'은 매우 중요한 차별화 지점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특정 상황에서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지만, 실제로 중요한 인물의 마음속 생각이나 감정은 포착할 수 없다. 반면 기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와 인맥을 통해 중요한 사람들의 비공식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고, 이를 통해 기사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물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AI는 인터뷰 자료와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가상의 인터뷰 질문을 생성하고, 인간보다 더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강 작가의 모든 인터뷰와 책을 학습해 관련 기사를 빠르게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AI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즉각적인 소감을 직접 물어볼 수는 없다. 이러한 인터뷰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는 능력은 인간 기자만의 고유한 강점이다. 최근 매일경제의 문학 기자가 문학적인 질문지를 한강 작가에게 던져 수상 당일 답변을 받아낸 기사가 이목을 끌었는데 이런 판단과 질문 작성 자체는 AI기자가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예시는 물론 대부분의 인간 기자들도 하기 어려운 취재이긴 하다.
관련 기사: https://www.mk.co.kr/news/all/11137036
이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한때 가졌던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꿈을 재검토하게 됐다. 사실 복직을 하면서 이 꿈은 한 10년 뒤 정도로 고이 접어둔 것이긴 하지만, 이제는 이것이 가능할까 싶은 정도로 변했다. 왜냐면 AI가 웬만한 인력은 대체하는 미래에서, 기자라는 직업에서 중요한 것은 기사 포맷으로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아니라, 현장 취재와 네트워크를 통해 얻는 정보다. (물론 이것은 이전에도, 지금도 중요한 당연한 이야기긴 하다.) 결국 기자로서의 명함과 관계망을 유지하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지켜나가는 것이 미래엔 어쩌면 더 중요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프리랜서 기자들이 많이 빠지는(?) 글쓰기 교육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라졌다. 챗GPT가 글쓰기에서 뛰어난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미래에는 글쓰기 선생님의 필요성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래에 글쓰기 선생님이 아예 필요 없어지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하면서, 더욱 깊이 있고 창의적인 글쓰기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다. 그래서 작문을 가르치는 글쓰기 선생님이 아닌,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주고 작가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등 현재와는 다른 방법의 글쓰기 선생님이 공급될 것이다.
어쩌면 ‘여전히 회사에 남아야 돼!’라는 꼰대 같고 안전주의적인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AI와 차별되는 글을 쓰려면 명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 나도 부정하고 싶다. 다만 ‘어떤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네트워크에 질문을 던져 지금 여기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입장을 받아낼 수 있는가’가 기자 역할의 핵심임을 말하고 싶었다. 이것을 명함의 도움없이 할 수 있는 인물은 몇이나 될까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