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다카시 ‘글쓰기의 힘: 읽지 않는 시대에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사이토 다카시의 ‘글쓰기의 힘’(데이원 출판)은 이미 2004년 출간돼 20만 부가 판매됐던 ‘사이토 다카시의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의 개정증보판이다. 이 책은 왜 2024년 8월 개정증보판으로 나왔을까. 2004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미디어 플랫폼 시대에 왜 또 이 책을 읽게 될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아마 그 이유는 증보판 머리말에 실린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글쓰기의 힘’이라는 글 때문일 것이다.
이 머리말은 기자뿐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최근 한 번쯤은 고민해 본, ‘AI 시대에 왜 여전히 글을 직접 써야 하는가’에 대해 수긍할 만한 주장문이다. 나 역시 최근 챗GPT를 이용해 이것저것 글을 써봤는데 생각보다도 더 큰 도움을 받았다. 아직은 내가 더 나은 것 같지만, 1~2년만 더 있으면 나같은 것보다는 훨씬 잘 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계속 사는 것(?)이 불안해졌다. 그때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책의 개정보증판에 실린 글이었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일본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일류의 조건’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사이토 다카시의 훔치는 글쓰기’ ‘독서력’ ‘단독자’ ‘어른의 말공부’ 등 다양한 책들을 펴내왔다. 사이토 다카시는 ‘글쓰기의 힘’ 증보판의 첫 시작을 “생성형 AI의 등장은 글쓰기 관련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문장으로 운을 뗀다. 그 역시 2022년 11월 챗GPT가 나온 이후 글쓰기에 AI를 활용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직접 쓰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왔다고 한다.
우선 그는 여전히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는 원고지 1장이 200자여서 2000자 글을 기준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원고지 1장이 400자라며, 사이토 다카시 역시 4000자 정도의 글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그는 첫째로 글을 직접 써야 하는 이유로 ‘구성력’을 언급한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문장 구성력에 대한 자신감은 지적 활동 전체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구성력을 익히면 불안이 줄어든다. 주위가 어떻든 자기 의견을 딱 부러지게 정리하여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런 건 AI가 해주겠지’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애초에 생성형 AI는 의뢰하는 사람의 수준에 맞춰지는 거울 같은 면이 있다. AI에 의뢰할 때도 더 만족스러운 답을 얻으려면 내용을 알기 쉽게 구성하여 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대부분의 글쓰기 책이 글쓰기로 인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덕목인 ‘끈기’다. 글을 읽지 않고 영상을 보는 시대를 넘어 영상도 숏폼 위주로만 보는 시대, 하나의 테마에 대해 길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 된다. 그리고 세상은 드문 일에 가치를 매긴다. 그래서 저자는 원고지 10장을 스스로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 때 자신감과 함께 글쓰기 근육이 붙게 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글쓰는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자기 형성’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 외에도 챗GPT 시대에 결국 살아남는 것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들이 많다. 이는 최근 남발(?)되기도 하는 '브랜딩'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참 논란이 되었던 AI 음악 저작권 문제를 생각해보자. ‘지드래곤이 부른 뉴진스의 하입보이’ 라든가 ‘박명수가 부른 밤양갱’ 같은 사례를 AI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AI는 지드래곤을 흉내낼 수 있어도, 애초에 ‘지드래곤 스타일’ 자체를 생성해내긴 어렵다. 사이버 가수들처럼 AI 가수를 만들어낼 순 있겠으나 실제 아이돌처럼 대중적인 큰 사랑을 받기는 아직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이다.
저자 역시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을 형성하여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문체가 형성되는 과정은 자기 형성의 과정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은 AI 시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없는 사람들은 AI에 밀리고 말 것이라는 공포와 함께 와닿을 수밖에 없는 말이 된다.
결국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직접 글을 구성할 줄 알고, 끈기가 있고, 자기 형성을 이룬 사람이어야 AI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AI가 다 해주는데 뭐’라는 생각으로 단련하지 않는다면 AI가 쓴 것을 제대로 검수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2004년의 작문법 서적을 2024년에도 읽히게 만든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 기사로도 발행된 서평입니다.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2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