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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나는... 10

나의 20대의 연인들...

by 오로라맘

종로에서 한참 잘 나가던 때에 나는 이직을 생각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생각이 들었기에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루트를 알아보고 싶었다. 내가 일하던 곳의 단골 언니가 일하는 백화점에 판매원으로 스카우트제의를 받았다. 일이 손에 익고 벌써부터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금밥을 먹을 각오를 하고 있었기에 다양한 방식의 세일즈를 배우고 싶었다. 사장님께는 공부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백화점으로 이직을 했다.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으로 출근을 했다. 나는 이직하게 된 곳에 나의 단짝 친구를 소개해서 우린 항상 함께 다녔다. 밤새 나이트클럽에서 놀고 아침엔 친구와 밥먹듯이 지각을 했기에 나는 20대에 근면성실한 사람들이 아직도 이해되지는 않는다. 놀고먹고 마시는 데에 24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어찌 근면성실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그때 만나던 남자친구는 군대에 들어갔다. 나는 그 친구와 결혼할 줄 알았었다. 사람일이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식장 들어갈 때까진 모른다고 하는 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의 인생에서는 남자를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유독 나는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내 곁에선 남자가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의 트라우마 때문에 남자는 믿지 않았지만 나의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했나 보다. 덕분에 지독한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린 나는 남자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무시하지 못하게 군림하면서 쥐고 흔들어 놓아야 직성에 풀려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들어가고 몇 개월은 면회도 가고 편지도 쓰고 그렇게 기다릴 줄 알았다. 모든 고무신 여자친구들의 국룰처럼 나 역시 남자 친구 일병 때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나는 애초에 지고지순과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눈에서 안 보이면 멀어진다. 한참 혈기왕성한 청춘들에게 2년의 시간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 동네 어귀 포장마차에 내 또래 남자 둘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잘생긴 외모에 기분 좋은 눈빛의 남자아이에게 자꾸 호감이 갔다. 그 친구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이 몇 있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는 꺼릴 것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면 대시하고 싫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포장마차 남자아이에게 대놓고 말을 했다. 남자친구 군대 가 있을 동안만 나랑 사귀자고 너무도 당당히 양다리를 대놓고 하자고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뻔뻔한 미친 X이다.

젊은 시절 그때의 나는 비상식적인 인간이었기에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속이고 만나는 것도 아니고 다 터놓고 말을 하고 만나니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만날 것이면 만나고 나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면 더 이상 안 오겠다고 당당히 말을 했다. 나의 당당한 태도에 어이없어하던 그 남자는 그날밤 연락이 왔다.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게 끝이 아니란 것이다. 나는 그 후로도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대놓고 대시를 했다. 애초에 나에게는 사랑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을 하지 않았기에 그런 태도와 그런 마음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내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진짜 인간으로서는 하지 못할 짓을 많이도 했었다. 내 맘대로 내가 하고픈데로 살아야 하는 나였다.

그러다가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며 명동거리를 활보하던 나를 보고 남자친구의 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알려준 것이다. 너의 여자친구가 바람피우고 있다고 말이다.

군대휴가를 나온 남자친구는 나에게 따지듯이 물었고 나는 그런 남자친구에게 대놓고 말을 했다. 나랑 결혼할 수 있겠냐고 그 당시에는 결혼만이 현재의 나를 구원해 줄 도구로 알았었다. 다른 남자와 바람난 나를 보며 남자친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나는 헤어지자 말했다. 이미 끝이난 사랑에 미련 따윈 애당초 없었다. 그리고 포장마차 남자친구가 사실 더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장마차 남자친구만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 나는 여러 남자를 한꺼번에 만나고 있었다. 군대 간 남자친구와 포장마차 남자 친구. 고등학교 미팅 때 만난 남자친구와 친구의 소개로 만난 대학교 조교까지 양다리도 아닌 문어발 수준으로 나와 결혼해 줄 사람을 물색하듯 찾고 있었다.

포장마차 남자친구에게도 물었다. 결혼할 수 있겠냐고 그 친구는 당시 불안한 미래와 자신이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기다려달라 했지만 나는 한시가 급했다. 빨리 확답을 받길 원했다. 인륜지대사라인 결혼을 나는 그저 현실도피처로 생각을 한 것이다.

만사가 즉흥적이고 마음 둘 곳이 없었던 나는 불현듯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졌다. 너른 외국에 나가 살아보고 싶었다. 나를 모르는 내가 모르는 곳에 가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어 졌다. 어릴 때부터 세계일주가 꿈이라 하지 않았던가 때마침 중학교 때부터 알던 남자사람친구가 아프리카로 이민을 간다 하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나를 예전부터 좋아했기에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나는 그것을 기회로 삼았다. 그 친구는 근면성실하고 착하고 바르며 남편감으로는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내 맘대로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24살 대책 없는 나는 그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결혼해서 같이 가자고 말이다. 예전부터 나를 좋아했고 타국에서는 결혼해서 가면 더 안정적이란 얘기를 들었던 그 친구는 수락을 했고 시간을 한 달 남짓을 남겨놓고 양가 상견례를 했다. 우리 집에서는 나의 완강한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에 넘어갔고 우린 아프리카에서 결혼식을 할 예정으로 웨딩드레스만 준비하고 바로 머나먼 타국으로 떠났다. 나의 인생은 그렇게 즉흥적이고 대책이 없었다. 명예와 돈 욕심도 없고 그냥 내 하고픈대로 대충대충 살아나가는 것이 그냥 좋았다. 그렇게 나의 인생 두 번째 일탈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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