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덧없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빨간 메밀꽃 축제를 강원도 영월에서 했다는 영상을 접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지금은 거의 져서 만개한 꽃 받은 볼 수 없지만 나름의 분위기와 가을코스모스는 볼 수 있을 거라는 누군가의 얘기에 혹해서 무작정 영월도 가기로 했다. 한 달 전 검사에서 종양표지자 수치가 또 애매하게 올랐다. 많이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과 신랑과 논나 저변 암재발때와 같이 야금야금 오르는 암수 치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달 정기검진에 CT와 PET-CT를 하루 건너 연속으로 찍어보기로 했다.
2년에 걸친 항암으로 혈관은 약해져서 CT조영제 부작용이 심해서 너무나 피하고 싶었지만 수치가 계속 올라가는 바람에 두 가지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불현듯 아침출근을 준비하던 중 내가 죽을 때 못해보고 못 보고 못 먹고 간다면 아쉬울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언제부터 나 자신의 금기어가 되었던 새털같이 많은 날이란 문장을 쓸 수 없게 된 이 시점에 나에게 주어진 오늘 단 하루의 소중함을 그사이 나는 또 망각했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몸이 아파지면 부리나케 식단조절과 운동을 벼락치기하듯이 하고 몸이 좀 괜찮아지면
나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은근슬쩍 운동과 식이요법을 안 하고 넘어가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내가 안쓰럽다고나 할까? 어찌 되었든 죽을 땐 죽더라도
몸을 움직을 정도의 체력만 있으면 열심히 다니면서 좀 더 이 생을 즐기면서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난소암이 걸리기 전에 항상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러 갔었다.
1월 1일이 평일에 있어도 해돋이를 보고 와서 오후에 출근할 정도로 극성맞게 여행을 좋아하긴 했다. 그렇다고 딱히 계획을 꼼꼼히 짜는 편도 아닌 무작정 떠나는 즉흥여행을 좋아했다. 어딜 가서 무엇을 보는 것도 좋지만 떠날 때의 설렘과 차를 타고 가면서 신랑과 함께 듣는 음악과 그냥 움직이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남편과 나는 다행히 둘 다 역마살이 심해서 차 타고 여행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마음이 잘 맞았다. 남편은 나의 즉흥적인 여행계획을 언제나 지지했고 장시간 운전에도 단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나의 벗이자 애인이자 아버지 같은 내 남편은 내가 살면서 한 선택 중에 제일 잘한 선택이란 것을 언제나 느끼게 해 준 사람이다. 거기에 나에게는 엄마 같은 시어머니도 계시다. 나는 시어머니를 많이 많이 좋아한다. 연세가 78세인 나의 시어머니는 고부갈등이란 게 뭔지를 알 수 없게 만든 참 좋은 어머님 이시다. 난소암 4기인 내가 한 번의 재발과 수술과 2년의 항암을 이겨내고 버틸 수 있게 해 주신 나의 남편과 더불어 나에게는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고마운 사람이시다. 아프고 난 뒤로는 친정식구들과는 사실 많이 만날 수가 없었다. 코로나시국에 알츠하이머와 파킨슨과 뇌졸중을 한 번에 겪으신 친정엄마와 나의 친정식구들은 나의 아픔을 세세히 공유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들의 걱정이 나에게는 힘이 아닌 미안함이 되어버려 나는 되도록 만남을 피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나의 시어머니와 남편은 나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격려해 주며 뒷바라지해 주는 동반자 관계이기에 부담 없이 나의 아픔을 드러낼 수 있기에 소중한 나의 고양이 두 마리와 내 남편과 시어머니는 나의 생명줄과 같다. 그들이 있기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여하튼 우리 세 사람의 즉흥 영월 여해은 토요일 새벽 6시에 서울을 출발해 영월에 9시쯤 도착을 했다. 예상대로 빨간 메밀꽃밭은 이미 져서 붉은빛이 갈색이 되어 벼렸지만 메밀밭 앞에 펼쳐진 맑은 동강과 고즈넉한 분위기와 색은 비롯 바랬지만 낙엽과 스산한 가을 느낌 그대로 그 나름대로의 멋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토요일이라 애매한 시간대에 움직이면 고속도로에서 옴짝 달짝 못할게 뻔하니 아예 늦게 가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영월에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보자고 하고 열심히 관광지를 검색을 했다. 먼저 가을꽃 축제가 근처에서 열린다고 해서 부지런히 차를 타고 갔다. 막상 가보니 이번에 처음으로 개장을 한 곳이라 입구 쪽에 형형색색의 국화꽃과 해바라기 장미꽃을 심어놓았는데 아직 다른 꽃들은 제대로 개화가 안되어있어 그냥저냥 구경을 했다. 국화꽃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 새삼 나도 죽으면 내 무덤가에 국화화분 하나를 심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산책과 꽃향기를 맡으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관광버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다행히도 일찍 출발을 한덕에 우리의 동선은 관광객들과 비켜 나갔기에 좋았다. 큰맘 먹고 영월 다하누촌의 정육식당으로 가서 한우 소고기를 배 터지게 먹었다. 암이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소고기라 하여 암 걸리고 나서는 소고기 미역국도 안 먹었는데 평소 소고기를 좋아하시는 시어머니를 위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단백질 섭취를 제대로 했다. 밥을 먹고 난 뒤 한반도 지형의 섬을 볼 수 있다는 전망대로 가서 멋진 경치를 즐기고 또 다른 멋진 관광명소를 찾았다. 괴상한 돌들이 많은 무릉도원면의 요석암이라는 곳을 찾아서 향했다. 사람도 없고 한적한 곳에 있는 기암괴석들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풍광이 펼쳐있었다. 얼마인지 모를 수많은 세월을 견디면서 만들어진 바위들이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강가장자리에 묘한 암석들이 주는 이질감과 강안 쪽의 빠른 유속과 물보라가 공포와 놀라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 관경이었기에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살을 느껴보고도 싶었고 물속도 궁금했었다. 제법 평평한 바위에 앉아 물속을 들여다보니 다슬기가 꽤 많이 붙어었었다. 흐린 구름사이로 찬란히 태양이 비췄다.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선 좀 더 자세히 물속을 들여다보고는 물살을 느끼고 싶어졌다. 손을 물안에 넣으니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편안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때 내 발밑에 비스듬히 붙어있는 다슬기 한 마리가 보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다슬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나의 몸이 앞으로 쏠린 것이다. 순식간에 나의 몸이 휘청거리면서 물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고라는 것이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것인지 알았다. 내 뒤에 서계시던 시어머님이 소리를 지르셨고 마침 가까이에 있던 신랑이 뛰어와 나의 어깨를 잡았다. 환절기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다행히 품이 넓었어 미끄러지지 않고 나의 어깨를 잡을 수 있던 것이다. 이미 허벅지까지 빠져있던 나는 가까스로 건져졌고 눈앞에서 물에 빠져서 들어 올려지는 상황을 목격하신 시어머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계셨다. 만약 신랑이 근처에 없었다면 나는 유속이 센 강물에 빠져서 떠내려 갔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방금 죽을 뻔했던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암에 걸려 재재발이 될지 모르는 상황과 언제부터인지 죽음과 가까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던 순간에서 방금 막 죽을 뻔했던 찰나의 상황이 되니 인생의 덧없음이 전율처럼 와닿았던 것이다. 살려고 아등바등거려도 찰나의 죽음을 예견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왜 그리 와닿았던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나이자만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왜 나한테만이라는 자책으로 원망으로 내 소중한 하루를 낭비했을까 하는 깨달음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죽음의 모두에게 공평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사고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고 아무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일을 미루면 안 될 것이고 지금 만날 사람을 만날 것이고 지금 먹고 싶은 것을 먹을 것이며 지금 보고 싶은 것. 지금 경험하고 싶은 것을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당장 죽어도 미련이 남지 않게 살고 있는가?
죽음을 친구 삼아 현재 살고 있는 나조차 다음에 내일로 괜찮아지면 이란 말로 미루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나 자신의 망각 속에 각성을 해두기 위해서이다.
한없이 허무한 인생 속에서 나 삶이 허무한 인생이 되지 않게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후회 없이. 죽음이 언제 오더라도 일말의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