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Meritocracy)는 자신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를 의미한다. 어쩌면 학연, 지연, 혈연에서 벗어나 개인의 노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듯한 말 뒤에는 약육강식과 과잉경쟁의 논리가 있다. 능력주의의 뒷편에 숨겨진 이 두 논리는 21세기 들어 더욱 탄탄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2023년을 살아가는 한 청년의 모습을 보자. 입시, 연애, 취업, 결혼 등 한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겪을 수 있는 대형 이벤트들은 모두 경쟁이라는 판위에 올라가있다. 물론 경쟁은 당연하다. 다만 이 전쟁터에서 한정된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일생을 바쳐가며 필요 이상으로 자기 착취에 몰두한다.
이 과잉경쟁이라는 전쟁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자격은 소위 '현질'을 좀 해야 주어진다.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의 주병기 교수가 만든 ‘개천용 기회불평등 지수’를 보면 IMF가 터지기 전인 93~97년 평균 17.96%에서 13~16년 평균 39.52%로 두 배가 늘었다. 우리 사회가 IMF 이전 보다 두배 이상 불평등해졌다는 의미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출혈이 크다. 우리나라의 과잉경쟁에는 '빨리빨리'라는 정체성도 함께 녹여져 있다. 속도와 효율성에 대한 가치를 반영하는 이 단어는 교육에서 '선행학습', 일에서는 '과로사'로 치환할 수 있다. 물론 RM이 엘 파이스(El Pais)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이러한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K'라는 특별한 수식어를 받기도 했다.
'K'의 세계에서 능력주의는 고된 노력과 기량, 이에 합당한 보상이 따르는 우아한 단어다. 그러나 이는 능력주의가 심어놓은 트릭이다. 23년 대한민국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2년 치 선행학습을 하고,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부유한 아이에게 뒤처진다. 공교육을 받고 졸업한 성인은 국제학교를 나와 해외 대학 석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온 졸업자에게 밀려난다. 당연하게도 K'의 세계에서는 '빨리빨리' 할 수 있는 아이가 성공할 수 있다. 출발선부터 한참 앞선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능력주의가 공정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형식적인 능력주의는 경쟁이라는 판 위에서 사람들을 양극단으로 갈라놓았다. 서민들은 기득권을 원망하고, 특권을 가진 자들은 부의 사다리를 끊임 없이 오르고있다. 개천은 말라가고 용은 끊임없이 자기 착취를 하는 시대. 능력주의는 모두 패자가 되는 삶을 물려주려는 것일까. 마이클 센델이 얘기한 것처럼 우린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