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월요일 아침,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머니께서 "할머니 돌아가셨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게 되면 무척 슬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다만, 역에서 삼십여 분 동안 멍하니 서있던 기억이 난다.
다시 고향으로 가는 기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울면 창피할 것 같아 눈물을 꾹꾹 참았다. 창 밖 날씨는 매우 맑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빈소에 도착하니 할아버지랑 아버지께서 맞이해 주셨다. 우리집 남자들은 이별 앞에서 꽤나 덤덤한 척했다. 어머니랑 동생은 영정 사진을 찾으러 가셨다고 한다.
한 시간 뒤, 두 분께서 학사모를 쓰신 할머니 사진을 들고 빈소에 도착했다. 결국 직접 할아버지랑 다시 영정사진을 찾으러 나섰다. 마땅한 사진이 없어 가족앨범에서 할머니 사진을 찾아보았다. 대부분 환갑 전 사진이었는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그 시절 할머니 얼굴에서 비애가 보인다.
영정 사진을 고른 뒤, 상복으로 갈아입고 조문객을 맞이했다. 사무실 직원분들도 와주셨는데,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식사가 맛있었다는 말만 기억난다.
이튿날 오전, 자고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입관을 하는데 맘이 좋지 않으신가 보다.
그동안 잘 참고 있었는데 곱게 누워 계신 모습을 보니 엉엉 울고 말았다. 장의사가 마지막 작별인사 하라고 하는데, 앞에 서니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머릴 쓰다듬고, 마음속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삼일이 되는 날까지 비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고운 가루가 된 할머니와 함께 선산으로 향했다. 장지를 하는 내내 비가 계속되었는데, 여전히 맘이 좋지 않으신가 보다.
제사상을 차리며 이제 그만 우시라고 했다. 잘 알아들으셨는지 해가 떴다. 돌아오는 길이 못내 눈에 밟히지만, 모레 다시 보러 올 거니까 이해해 주실 거다.
장지를 마치고 할머니의 영정 사진과 함께 집에 왔다. 발인 내내 사진을 들고 있는 탓에 얼굴을 제대로 못 봤다. 막상 보니까 내 핸드폰에 있는 사진들이 더 잘 나온 것 같다. 영정 사진은 거실 서랍에 고이 넣어둔 뒤, 부모님과 매실주 한잔하고 서울로 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도착해 핸드폰에 저장된 할머니 사진을 찾아보았다. 대학교 졸업식 날 환하게 웃는 할머니 얼굴이 보인다. 졸업 전에 취직했다고 기뻐하시던 할머니 얼굴이 생각났다. 병원에서 수척해진 얼굴만 보다 모처럼 웃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장례식을 치른 삼 일이 끝나고, 할머니 얼굴을 더듬더듬 기억해 본다. 삶은 비애로 얼룩져 있을지 몰라도, 나와 함께 있을 땐 활짝 웃고 있던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