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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성 May 02. 2023

할머니의 얼굴

해뜬날

4월 26일 월요일 아침,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전화 한 통을 받다. 어머니께서 "할머니 돌아가셨어"라고 말씀하다. 그 말을 듣게 되면 무척 슬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다만, 역에서 삼십여 분 동안 멍하니 서있던 기억이 다.


다시 고향으로 가는 기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울면 창피할 것 같아 눈물을 꾹꾹 참았다. 창 밖 날씨는 매우 맑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빈소에 도착하니 할아버지랑 아버지께서 맞이해 주셨다. 우리집 남자들은 이별 앞에서 꽤나 한 척다. 어머니랑 동생은 영정 사진을 찾으러 가셨다고 한다. 


한 시간 뒤, 두 분께서 학사모를 쓰신 할머니 사진을 들고 빈소에 도착다. 결국 직접 할아버지 다시 영정사진을 찾으러 나섰다. 마땅한 사진이 없어 가족앨범에서 할머니 사진을 찾아보다. 대부분 환갑 사진이었는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시절 할머니 얼굴에서 비애가 보다.


영정 사진을 고른 뒤, 상복으로 갈아입고 조문객을 맞이다. 사무실 직원분들도 와주셨는데,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식사가 맛있었다는 말만 기억다.


이튿날 오전, 자고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입관을 하는데 맘이 좋지 않으신가 다.

그동안 잘 참고 있었는데 곱게 누워 계신 모습을 보니 엉엉 울고 말았다. 장의사가 마지막 작별인사 하라고 하는데, 앞에 서니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머릴 쓰다듬고, 마음속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삼일이 되는 날까지 비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고운 가루가 된 할머니와 함께 선산으로 향했다. 장지를 하는 내내 비가 계속되었는데, 여전히 맘이 좋지 않으신가 보다.


제사상을 차리며 이제 그만 우시라고 했다.  알아들으셨는지 해가 떴다. 돌아오는 길이 못내 눈에 밟히지만, 모레 다시 보러 올 거니까 이해해 주실 거다.


장지를 마치고 할머니의 영정 사진과 함께 집에 왔다. 발인 내내 사진을 들고 있는 탓에 얼굴을 제대로 못 봤. 막상 보니까  핸드폰에 있는 사진들이 더 잘 나온 것 같다. 영정 사진은 거실 서랍에 고이 넣어둔 뒤, 부모님과 매실주 한잔하고 서울로 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도착해 핸드폰에 저장된 할머니 사진을 찾아보았다. 대학교 졸업식 날 환하게 웃는 할머니 얼굴이 보인다. 졸업 전에 취직했다고 기뻐하시던 할머니 얼굴이 생각났다. 병원에서 수척해진 얼굴만 보다 모처럼 웃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묘다.


장례식을 치른 삼 일이 끝나고, 할머니 얼굴을 더듬더듬 기억해 본다. 삶은 비애로 얼룩져 있을지 몰라도, 나와 함께 있을 땐 활짝 웃고 있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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