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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성 Jun 16. 2023

사십구재

어디로

토요일 늦은 오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우산 없이 길을 나섰다. J라 평소였으면 꼭 챙겼을 텐데 왠지 우산 없이 가고 싶어 그냥 길을 나섰다.


다행히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배려인가.

자연현상에 소박한 의미를 부여하며, 왜 애니미즘이 생겼는지 살짝 깨달았다.


모처럼 본 사촌형은 얼굴 살이 쪽 빠진 모습이다. 고모가 너무 슬퍼해서 한동안 술을 끊었다고 했다. 어떤 이별을 맞이하냐에 따라서 사람은 많이 변하게 된다. 할머니와의 이별이 사촌형을 더 의젓하게 만든 것 같다. 긍정적인 변화야 말로 이별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참 다행이다.


집에 오기 전 이틀 동안 술을 꽤 많이 마셨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사촌형의 금주를 깬 바람에 이날도 술을 많이 마셨다. 평소 같았으면 만취할 만큼 마셨는데도, 어째서인지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할머니께서도 젊었을 적 술을 좋아하셨다는데, 막상 내가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건강이 더 안 좋아지는 바람에 술을 드시지 않았다. 살아생전 제대로 한 잔 드리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이윽고 얕은 숙취와 함께 아침이 찾아왔다. 8시부터 제사 준비를 한다고 해서 7시 반에 알람을 맞춰놨는데, 이미 제사 준비가 끝나있었다. 말끔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일찍 제사 준비를 마친 엄마를 조금 원망했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씻으러 들어가면 한나절이라고 잔소릴 하셨지만, 오늘은 금방 씻고 나와 제시간에 인사를 드렸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산소에 갔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땅이 무척 질었다. 질퍽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금세 선산이 보였다. 쨍쨍한 햇빛 아래 할머니가 누워 계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디선가 고사리를 한움큼 따 오셨다. 한줌 흙으로 돌아간 할머니 옆에 생전 즐겨 드시던 고사리가 가지런히 놓졌다.


사십구재도 했고 이젠 어디로 가셨을까. 한평생 아들 손주 뒷바라지하다 간 할머니는 어떤 심판을 받으셨을까. 혹여나 나쁜 짓을 하셨더라도, 내가 좋은 일 많이 할 테니 정상참작 해주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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