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리아에서 양념감자를 먹다가 불현듯 한일월드컵이 떠올랐다. 태극전사들의 목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진 2002년, 그 당시의 난 너무 어렸고 축구에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월드컵이 엄청난 이벤트인지, 4강 진출이 위대한 업적인지 잘 몰랐다. 다만 머리가 크고 난 뒤, 당시 선수들의 플레이를 수차례 보며 온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9살 무렵 내겐 월드컵 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께서 사 오시는 양념감자였다. 어머니는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롯데리아에 들려 양념감자를 사 가지고 오셨다. 아마 늦게까지 일하시느라 아들들과 함께 저녁을 하지 못해 미안하셨을 것 같다. 나와 동생이 양념감자를 야무지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내셨을지도 모른다.
양념감자의 달콤 짭조름한 맛은 늘 최고였다. 특히 양파맛을 좋아했는데, 처음 맛본 이래로 쭉 내 최애 간식으로 남아있다. 오늘도 소스 가루를 열심히 섞고 있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마치 어머니께서 부산하게 들고 와 식탁에 올려두셨던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양념감자를 좋아하는 건 맛도 있겠지만, 그 안에 담긴 어머니와의 소소한 추억들이 있어서일지도.
양념감자는 롯데리아의 효자 메뉴로 자리 잡았지만, 나는 부모님의 효자로 자리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결혼해서 손주를 안겨드리는 것도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인다. 그래도 2300원짜리 감자튀김에서 어머니 생각을 하는 아들은 몇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에게 양념감자는 명절날 챙겨가는 선물세트와도 같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느끼는 미안함과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년 동안 변치 않은 양념감자의 맛을 음미하며 그 시절 양념감자를 떠올렸다. 단순한 간식이 아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던 부모의 사랑이 담긴 선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