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금성 Dec 13. 2024

비상계엄에 대한 전 국회의원 비서관의 개인적인 생각

표류하는 정치의 본질과 민주주의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총구 앞에 있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봉쇄하려 했다. 그리고 불과 6일 만에 그 대통령은 내란 혐의의 피의자가 되어 출국이 금지되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이 사태는 정치적 혼란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방주의 방향타가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 [출처: 동아일보]

이 위기의 실체는 계엄 주도 세력의 진술을 통해 명확해졌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윤 대통령이 포고령을 직접 검토했고, 함께 의논하며 최종본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역시 "윤 대통령이 국회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계엄 기획부터 실행까지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비상계엄은 통치행위"라며, 야당을 "망국적 국헌 문란 세력"으로 규정했다. 더 나아가 극우 유튜버들의 부정선거 의혹을 신뢰해 선관위 전산시스템 점검을 지시했다고 실토했다. 이는 자신의 당선을 이끈 선거 시스템마저 불신하는 모순적 행태였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출처: 연합뉴스]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 비서관이자 대선 캠프 청년 전문위원으로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치적 일탈이 아닌 우리 민주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세 가지 측면에서 이를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제도적 맹점이다. 국무회의에서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1인의 판단으로 계엄이 선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87년 헌법이 안고 있는 권력구조의 치명적 결함을 드러낸다.


둘째, 정치문화의 심각한 퇴행이다. 여의도 정치 현장에서 경험한 바, 정당은 이미 정책과 비전을 논하는 공론의 장이 아닌, 계파 간 권력 투쟁의 전장으로 변질되었다. 당내 민주주의는 실종되었고, '내부 총질'이라는 낙인찍기로 이견을 봉쇄하는 문화가 고착화되었다. 특히 정무적 판단이라는 미명 하에 데이터와 전문성은 무시되고, 직관과 감정에 의존하는 의사결정이 만연해있다.


셋째,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괴리다. 대통령은 극우 유튜버들의 부정선거 의혹을 신뢰해 군대를 동원했고, 이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라 강변했다. '통치'가 아닌 '협치'를, '진압'이 아닌 '소통'을 요구하는 시대정신과의 간극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재판을 받는 故노태우, 故전두환 [출처: MBC캡처]

법치국가는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무너짐이 법을 수호해야 할 사람들로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인 출신의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법 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며 사법적 판단 자체를 회피하려 한 행위가 그 단적인 예다. 이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인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권력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의적으로 행사될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스스로 법적 책임으로부터의 면책을 주장하는 상황은, 우리 사회가 법치(法治)에서 인치(人治)로 퇴행할 수 있다는 심각한 경고신호다.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은 헌법학계의 중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적했듯이 "통치행위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정당한 통치행위로 인정하기 어렵고, 충분히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법원 또한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12·12 군사반란 및 5·18 내란 사건에서 이미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 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 법원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심사할 수 있다"고 명확히 판시했다.


대통령은 '야당의 입법 폭주'를 계엄의 근거로 내세웠으나, 이는 헌법이 규정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적 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정치적 갈등을 군사적 수단으로 해결하려 한 이번 시도는, 법치주의를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다.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텔레그램 문자 [출처: 뉴데일리]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극단주의와 조직적인 여론 조작이 민주주의의 또 다른 위협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이 당 보좌진과 지역위원회를 동원해 기사 댓글 달기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고, 일부 정치인들은 유튜브 등에서 선동적 정보를 무분별하게 유포하고 있다. 특히 김어준의 암살조와 생화학 테러 관련 황당한 제보 언급은 공포와 불신을 증폭시키는 비상식적 선동이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온라인의 혐오가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자택에 흉기를 보내고, 가족을 거론하며 살해 협박 문자를 보내는 등 극단적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 SNS상에서는 특정 정치인의 주소와 일상을 공개하는 '좌표 찍기'가 이루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한 조직적 위협이 자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생각이 다르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합리적 토론과 타협은 '배신'이란 낙인이 찍히고, 상대를 타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이 야당을 '망국적 국헌 문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야당은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아세우는 상황에서, 이러한 극단주의는 더욱 심화될 조짐을 보인다.


극심한 정치적 혼란은 경제적 충격으로도 이어졌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연중 최저점을 기록했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이탈했다. 특히 정부의 '밸류업' 정책 수혜를 받던 금융주가 급락하면서, 정책의 신뢰성마저 훼손되고 있다. BBC를 비롯한 해외 주류 언론들이 한국의 정치 리스크를 집중 조명하면서, 경제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1년래 최저치 찍은 코스닥 지수 [출처: 한경]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혼란한 상황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이번 탄핵 집회는 1970, 80년대의 시위 문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촛불 대신 LED 응원봉을 든 2030들은 '전국얼죽아연합', '강아지발냄새연구회' 같은 일상적 문구를 들고 정치 참여를 표현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부르며, 평화적이고 축제 같은 분위기로 시위 문화를 바꾸어놓았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시민들의 성숙한 민주의식이다. 탄핵과 무관한 특정 진영의 편향적 발언이 나올 때면 "단상에서 내려오라"며 야유가 빗발쳤다. 민주주의를 일상으로 호흡하며 자란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세상을 바로잡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카페 선결제 릴레이처럼 따뜻한 연대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어느 외신 기자의 표현처럼 "K팝 페스티벌 같았던" 이 시위는, 응원봉이 화염병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거리로 나온 누워있기연대 · 얼죽아협회 [출처: 아시아경제]

불과 올해 초만 해도 나는 정당에 몸담고 있었다. 그곳에서 "정당의 목적은 정권 획득"이라고 배웠다. 이 명제는 보수정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 명제 근본적으로 잘못 설정되었다. 정당과 정치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함이다. 가치 실현의 방향이 달라 정당 간 경쟁을 하는 것이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정당의 존재 이유에 어긋난다. 권력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권력을 잡기 위해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잡아야 한다. 현실 정치에서 '힘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힘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망각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권력 투쟁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보수주의자였다. 보수의 가치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수단은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였다. 그러나 보수정당을 대표해서 대통령이 된 그분은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정면으로 파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의 가치를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무너뜨린 것이다.


탄핵 찬성 투표를 호소하는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 [출처: 뉴시스]

역사적으로 보면 가장 큰 위기가 가장 큰 기회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제도 개선이나 정권 교체를 넘어, 정치의 본질을 회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다.


정치 문화의 근본적 쇄신이 필요하다. 여의도 정치 현장에서 경험한 바, 현재의 정당들은 정책과 비전을 논하는 공론의 장이 아닌 계파 간 권력 투쟁의 장으로 전락했다. '내부 총질'이라는 낙인찍기로 이견을 봉쇄하는 문화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정당이 '대통령 제조공장'으로 전락하고, 정치인들이 생존에만 몰두하는 현실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이를 위해 시민들의 비판적 사고와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허위정보와 극단적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팩트체크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 SNS의 감정적 분노나 진영 논리에 갇힌 비판이 아닌, 정책과 법안을 살피는 성숙한 참여가 필요하다. 극단적 지지자가 아닌, 보통 시민들의 여론이 국민의 대리인에게 올바른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집회, 시위를 너머 생활 속 민주주의의 실천이 절실하다. 중앙 정치만큼이나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파트 입주자 회의부터 학부모회, 직장 내 의사결정까지, 우리 주변의 모든 공론장에서 민주적 절차와 합리적 토론을 실천해야 한다. 생활 속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되어야 국가적 단위의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회 [출처: 서울경제]

보수적 대통령의 진압 방식은 무력했지만, 현대적 시민들의 연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화염병 대신 평화로운 목소리, 투쟁 대신 연대의 힘으로 변화를 만들어간다. 권력의 폭력성은 이미 시대에 뒤처졌고, 새로운 세대는 일상의 온전함으로 역사를 바꾸고 있다.

장자는 행복한 국가에서 백성들의 행복한 삶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백성들이 모여서 행복한 국가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우리 정치가 잃어버린 본질을 회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처럼 개인의 덕(德)이 살아있는 시민의식이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진영을 넘어선 연대, 폭력 대신 평화, 혐오 대신 포용을 선택한 보통 사람들의 힘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희망이다. 파선이 된 우리 정치의 방향키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결국은 각자가 자신의 덕을 지키며 온전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의 힘일 것이다. 부디 이번 위기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