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못한 아사나, 조용한 종료

아쉬탕가 3년 수련의 마지막 기록 (1)

by 정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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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이어온 수련을 마치고 난 2년 뒤.


요가할 땐 부담감이 너무 심했던 같다.

단정하지 않고 '그랬던 것 같다'라고 문장을 마치는 건 싫지만, 진짜 그랬었던 거다. 진도를 나아가기는커녕 계속 줄어들어서. 나는 요가가 좋아서 남들보다 먼저 자격증까지 딴 사람인데 결국 다른 사람들보다 밑천이 빨리 드러나서. 나중엔 수련의 재미도 잃고 의무적으로 수련했다. 수련해도 부족한데, 수련을 안 하면 다가올 파국이 두려웠나 보다.



정말 매일 해도 전혀 늘지 않았다. 세상 수많은 격언에서는 ‘매일 하고 있으니 발전하고 있다’며 나를 계속 설득해 댔다. 그런 격언은 세상천지에 떠돌다 못해 발에 채일 정도로 나뒹굴어댔지만, 내 수련만은 늘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개선되는 건 없는 와중에 지적받을 일은 늘어나고, 계속 혼나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언젠가는 잘할 거란 기대 없이 그냥 못하는 게 나라는 생각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매일 수련했다, 이유는 못하니까.



수련 초기 단계에서부터 프라이머리 시리즈의 마지막 관문인 드롭백 컴업을 성공했다. 서 있다가 허리를 뒤로 젖혀서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 그리고 다시 서는 동작을 세 번 반복한다. 나는 이 상태에서 발목까지 잡기도 했었다. 시작 단계에서부터 유연함은 있었지만, 선생님은 근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셔서 더 나아가기를 권장하지는 않으셨다. 다음에 부여받은 세컨드 시리즈는 발만 담갔다가 뜨거워서 바로 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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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프라이머리 시리즈만 수련했다. 그러다가 하나둘씩 줄여나갔다. 결국 내 진도는 하프시리즈까지 축소됐고, 절반으로 줄인 진도를 다시 늘려가야 했다. 그 와중에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아사나들이 있었다. 나는 3년 동안 숩타쿠르마아사나 B를 못했다. 나보다 다리가 길다면 어려운 동작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몇 배에 달하는 코어 근력을 키워야만 겨우 가능할 일이었다.



코어. 처음에는 3년을 해도 안 되는 거면 10년을 해서 되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매일 하자는 게 목표였다. 그게 선생님의 기대와 비례하는 속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럼 나는 뭘 더 했어야 했을까. ‘다른 곳에서라도 더 수련하고 다른 운동이라도 더 해야 됐을까’라고 하기엔 내가 들은 지침은 그게 아니었다. ‘하던 수련에 충실하고, 수련 시간에 집중하고, 내 몸을 관찰하기’가 아주 자명한 정답이었다.



“저는 집중했는데, 안 되네요.”

솔직하게 소회를 털어놓아봤자 핑계대기, 토 달기, 예의 없이 대들기에 불과했다. 안 되는 것도 서러운 나는 ‘대충 하는 수련생’으로까지 전락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기를 버렸다. 마음에 없는 좋은 소리를 먼저 할 바엔 입을 다물기. 어쩌면 수련을 그만해야 했을 타이밍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두면 포기라는 굴욕이 늘 두려웠나 보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채 수련했다.



여러 가지에 손을 뻗지 말고 하나에 집중하라는 그 가르침은 나에게 어떤 가르침이었을까. 아쉬탕가 요가를 하지 않고, 양 발목을 다리 뒤에 거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가끔씩 들여다보는 것도 경계해야 했던 그 시절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걸까. 나는 그 아사나를 내려놔야만 했다, 그러기엔 너무 늦은 타이밍에. 나는 결국 그 아사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의지와 상관없이 수련은 종료됐다.




이 글은 아쉬탕가 수련을 마친 후의 경험을 기록하는 연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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