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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무 Dec 18. 2023

행복하기보다 평화롭기를

파도가 치는 잔잔한 바다

나한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였다. 행복에 재능이 없는 사람으로서 그래야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주변 사람과 환경에 따라 시도때도 없이 변하기 때문에 파악하기조차 어렵고, 추구하던 가치가 바뀌었을 때, 과거의 결정은 현실과의 타협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자유를 원했다. 자유가 있다면 현실에 따라서, 타인에 따라서 반응하는 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나'라는 존재가 원하는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유로워지는 그 순간을 고대하며 성취를 좇았다. 하지만 최근 내가 하는 일을 떠나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떠나서 일상이 조금씩 매몰되는게 느껴졌다. 여전히 나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휘발적인 가치가 아니라 자유에 대한 신념과 집념으로 울곧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순간부터 내 삶의 통제권은 자극을 향한 갈증으로 잠식되고 있었다. 


매몰되기 시작한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타지로 떠났다. 오랜친구를 만나고, 하염없이 걷고, 온전히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불변의 가치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무엇 하나에도 가치를 두는 것을 두려워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여전히 자유롭길 바라고 있었지만, 정작 자유롭게 결정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결심이 필요한 과정을 피하고, 자극이 있는 순간을 좇고 있었다. 


재미, 성취, 만족 등 자극을 좇는 이유는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당장 기분이 좋아지니까 자극을 통해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뜨거움이 사그라들면 고요함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과정이 아닌 순간에서 찾은 의미는 허무함을 넘어 공허함으로 나를 가득 채운다. 


내가 추구하는 예술가로서의 삶과는 대단히 멀어졌다.스스로를 탐구하고,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예술가와 달리 나는 꽤 오랫동안 새로운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꿈에 조금씩 가까워져도, 누군가와 소중한 관계를 맺어도 다음 대사와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역할극을 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예술을 이해한다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답을 찾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삶을 한번 더 진지하게 바라봤다. 


삶을 관조하기도, 사랑하기도, 때론 실망하기도 했다. 통제를 원하면서도 질서가 깨지는 변화를 기대했다. 새로운 스스로의 모습을 원하면서도 울곧게 나아가고 싶었다. 이런 모순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바꾸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러고 있다. 바뀌지 않는 무언가는 지금의 태도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예술을 할 것인지는 상관이 없다. 그저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순간이 아닌 과정을 살아갈 뿐이다. 


우리는 행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꿈을 펼치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행복을 단편적으로 하나의 자극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도 사실은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더 많다. 그래서 우리는 좌절한다. 그리고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사랑이 끝이 났을 때의 순간적인 실망감으로 인해 새로운 자신을 가장 많이 발견하여 빛났던 과정의 의미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항상 행복할 수는 없지만, 항상 평화롭기를 바란다. 가끔 자극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더라도 공허하지 않고, 실패와 상처로 일상이 매몰되더라도 평화롭다면 덤덤하게 나아갈 수 있다. 눈 앞에서 거세게 파도가 칠 수도 있지만, 광활한 바다는 개의치 않고 잔잔하다. 모순이 가득한 역설적인 삶도 평화를 찾는다면 그것은 조화로운 예술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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