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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무 Dec 14. 2022

버틸 수 있는 구조의 설계

4050에서 찾은 문제 

2022년 회고 1부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변수가 많고 결과론적인 스타트업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잘 버틸 수 있을까요? 단순히 마음을 단단하게 먹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전략적으로 버틸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특히 성과가 전혀 없더라도 최소 1년은 도전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비전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타트업의 IR자료를 보면 흔히 솔루션이 먼저 나오고 비전이 마지막에 나옵니다. 논리적인 흐름에서 해결방법이 검증이 되어야 팀이 꿈꾸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창업에 임할 때는 그 순서가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솔루션을 시작점으로 설정한다면 버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처음 시도한 아이디어가 곧바로 성공 가도를 달린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이디어가 실패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 해볼 수 있는 시도가 제한적이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아이디어를 버리고 새로운 기회를 탐색해야 하며, 심지어 아이디어가 바뀌었을 때 비전없이 뭉친 팀은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비전을 먼저 수립할 경우 결과는 다릅니다. 아이디어가 실패하더라도, 비전이 유지된다면 팀이 원하는 미래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버틸 수 있는 선택권이 본인에게 있습니다. 시장이 내가 제시한 솔루션을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아이디어를 구상하면 그만입니다. 즉,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 얻은 고객과 시장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도전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버티기 어려운 시기가 오더라도,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무한히 있습니다. 


아이디어 없이 비전을 수립하는 것은 막연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리는 세상과 별개로 실제로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해서 문제를 탐색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역량보다는 신념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난이도를 줄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미래에서 문제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선택한 첫번째 미래는 바로 시니어입니다.  


지금의 4050세대는 다시 오지 않을 굉장히 특징적인 고객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MZ(90~)와 알파(13~)세대와 달리 30대, 40대에 처음 스마트폰을 접했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시대를 몸소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4050을 상상할 때 어렵고 완고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이들은 누구보다 큰 변화를 겪고 있으며, 때문에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어서 오히려 유연한 고객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파, MZ세대의 특징 (대홍기획블로그, 2022)

지난 10년의 IT창업 호황기동안 4050은 기업으로부터 외면 받았습니다. 여태껏 트렌드는 2030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특권은 젊은 소비자의 전유물이였습니다. 중년은 항상 과거에 머무르는 존재였으며, 어떤 기업도 과거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커머스가 발달하면서 4050은 보란듯이 압도적인 구매력을 자랑하였고, 전세계적으로 초고령사회가 가시화되면서 이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 침체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구매력이 뛰어난 고객을 타겟하는 것은 실속있는 성장을 이루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즉, 지금 창업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한 것입니다. 


시작점을 찍은 후 저희는 곧바로 고객을 만났습니다. 일주일동안 51명의 중년여성과 대화를 나누었고, 고객 페르소나와 욕망을 분석하였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책을 읽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고, 시간을 유익하고 보람차게 보내고 싶어하며,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만 몸과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습니다. 또 외롭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며, 정보수집이 매우 수동적이여서 광고효율이 높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저희는 소속, 성취, 안정 세가지 욕망을 기반으로 4050이 느끼고 있는 28개의 불편함을 분류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성적인 경험과 정량적인 분석을 통해 프레임스토밍을 진행했는데, 저희가 정의한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합니다. 바로 4050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2030에 비해 세상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부족해 나다운게 무엇인지 모르며, 어떻게 알아보고 살아가야할지 막연합니다. 디지털 역량이 나쁘지 않아 네이버로 검색은 잘하지만, 무엇을 모르는지 몰라 검색보다는 알고리즘과 광고를 선호합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소외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공허함만을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문제가 단순하니 목표 또한 단순합니다. 4050이 소외되지 않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 변화하는 세상을 접하고, 나다운 삶을 찾고,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물론 고민해야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4050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수단에 따라 수천가지, 분야에 따라 수만가지 방법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솔루션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팀의 런웨이에 따라 검증의 깊이를 설정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저희는 콘텐츠를 매개체로 몇가지 해결방법을 직렬적으로 검증해보고 있는데, 아직은 명확한 기간을 두고 승부를 보는 계획을 세우고 있진 않습니다. 여전히 고객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으며, 문제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는다면 다양한 도전적인 시도와 더 나은 해결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4050을 비롯한 시니어를 타겟할때 유념해야 하는 점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시니어를 마냥 일반고객과는 다른 '시니어'로 바라보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관심분야와 성향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들 또한 욕망과 갈증이 있는 매우 상식적인 대상입니다. 두번째는 시니어 자체가 산업이거나 서비스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들 자체가 서비스가 되는 영역은 헬스케어와 요양산업 정도이며, 오히려 시니어의 특징을 활용한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더욱 경쟁적일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네이버밴드나 캐시워크, 퀸잇, 올웨이즈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시니어가 됐을때 필요할 것 같은 서비스를 만들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4050은 10년 후 4050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릅니다. 단지 나이로 시니어 시장을 이해한다면 접근도 결과도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지난 3개월의 시간이 비로소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사업기회를 찾기위해 프레임워크를 수립했고, 가장 먼저 도전하고 싶은 미래로 4050을 선택하였습니다. 고객을 단기간동안 최대한 많이 만나보면서 문제에 대한 어느정도 확신을 얻었으며, 4050이 소외받지 않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해야할 일은 명확합니다. 비전에 공감하며 버틸 수 있는 팀을 만들고, 해결방법을 검증할때까지 버티는 것입니다.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거나, 어쩌면 문제에 대한 확신마저 잃어 다시 사업기회를 탐색하기 위해 프레임워크의 처음으로 돌아가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과) 떠밀리듯 내리는 결정만큼 책임지기 싫은 결과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복적인 정체가 관습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로부터 의미를 생성시키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강경하게 신념을 지키고, 때로는 유연하게 변화를 주며 계속 나아갈 뿐입니다.


2022년 회고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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