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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무 Jan 04. 2023

행복마저 재능일지도 모릅니다

평균과 행복, 그리고 자아

그럴듯한 삶의 기준이 너무 높습니다. 또래와 비교하면서 20대에는 직장, 30대에는 결혼, 40대에는 자산 등 “이 나이때 이정도는 해야지”라며 평균을 목표로 하지만, 사실 평균이 평균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을 모아둔 이상하고 이상적인 ‘평균’입니다. 온갖 평균이 생겨나는 이유는 타인으로부터 내 평판과 효율을 극대화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수평적인 비교에 있어서 내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지 않는 이상, 항상 무엇인가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평균을 뿌리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막상 노력 끝에 평균적인 삶을 쟁취하더라도 내가 정한 평균이 아니기에 마음 한구석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이것일까? 나는 정말 행복할까? 


문득 행복마저 재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향적인 사람보다 외향적인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 더 쉽게 적응하고, 예민한 사람보다 둔감한 사람이 스트레스에 덜 민감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흘러가는대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행복마저 성취를 통해 쟁취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행복한 삶의 많은 부분은 기질적으로 정해진 요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재능이냐, 환경이냐'만큼 결과론적인 닭과 달걀의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의미가 있는 과정입니다. 가장 먼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에 행복한 순간을 곧바로 인지하나요? 아니면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면서 행복의 순간을 찾나요? 도파민이 분비되는 짜릿한 순간을 즐기나요? 아니면 세로토닌이 주는 안정감으로부터 기운을 얻나요? 시작은 스스로 행복의 재능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형적으로 행복에 재능이 없는 사람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으로서 항상 무언가 준비하는 삶을 살았으며,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 감성적으로 섬세한만큼 자아와 통제는 저에게 중요한 두가지 키워드입니다. 그러다보니 손 닿을 거리에 행복이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행복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게 중요합니다. 행복에 재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평균'에 휘둘리며 내게 주어진 여러 선택지와 가볼 수 없는 길에 대한 미련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울곧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은 환경에 따라 시도때도 없이 변하기 때문에 파악하기조차 어려우며, 추구하던 가치가 바뀌었을 때, 과거의 결정은 현실과의 타협으로 치부되기 마련입니다. 


저는 그래서 창업했습니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현실에 따라서, 타인에 따라서 반응하는 내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원하는 가치를 알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규모의 성취가 필요합니다. 

여정에 함께하고 싶은 분을 찾고 있습니다 (dotz.super.site)

본인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인가요, 아니면 현실과 타협한 결과인가요? 질문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막연하진 않았을까 감히 예상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용기가 필요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정한 것도 아닌 '평균'에 눈을 가리지 않길 바랍니다. 객기처럼 비춰질까봐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자아탐구는 인간의 항구적인 관심사이며, 그러므로 우리의 여정은 이성적이고 무모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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