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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Mar 17. 2023

김려원의 시를 품은 울산 12경-8. 대왕암공원

기암괴석·포말·바다… 해송따라 굽이굽이 절경

시를 품은 울산 12경      

주말ON    U&U TV       

           

기자명 김려원

입력 2023.03.16 20:42


[주말ON] 김려원 시인의 시를 품은 울산 12경


기암괴석·포말·바다… 해송따라 굽이굽이 절경


초목 부지에 울기등대가 들어서면서 빽빽이 조성된 해송림. ⓒ울산신문 자료사진


"와아, 별거 있겠나 싶더만 울산에 이래 멋진 곳이 있네!" 한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소나무 잔가지를 흔든다. 마지막 입장이 끝난 출렁다리 출구가 카랑카랑하다. "어데서 오셨는데예?" 다리에서 내려선 중년남성이 입을 뗀다. "창원에 사는데 오늘 처음 울산에 왔어예. 진짜 멋지네예." "어데 요기뿐이겠습니꺼. 십리대밭에도 꼭 가보시소. 밤에는 등억온천에서 뜨뜻허게 주무시고예. 물이 끝내줍니더." "그래예? 낼 출근이라 아쉽네예." "하루 제끼삐리소 마." "그래삐까예?" 갖은 표정 사진을 찍은 여학생들의 웃음이 까르르 솔숲을 흔들고, 그들이 떠난다. 하늘과 바다를 가른 출렁다리가 솔바람을 붙잡는다. 해안으로 달려온 파도 행렬이 솔잎 무늬를 그린다. 나는 입구에서 대여한 실내화를 반납한다. 젊은 남녀가 쉼터 나무의자에서 얼굴을 맞대고 속삭인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고양이 두 마리가 바위섬 낭떠러지를 어슬렁거린다.


동해 푸른물결이 넘실대는 동구 대왕암. ⓒ울산신문 자료사진


# 붉은 소나무 사이로 형상을 드러내는 대왕암


용추암(대왕암) 전망대에 선다. 유난히 붉은 소나무 둥치 사이로 형상을 드러내는 대왕암. 용이 승천하다가 그 바위에 떨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의 용은 곧 해신(海神)을 일컬으니 다른 이름이 '대왕(大王)'이다. 우리의 강과 산과 신당에 자주 나타나는 대왕이라는 이름들이 그것이다. 경주의 대왕암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대왕이, 울산 대왕암은 문무대왕비가 묻힌 바위로 추정한다. 대왕암 밑에는 용이 드나드는 용굴이 있다는데 어디쯤일까, 헤아려볼 양이면 파도가 거품을 물고 달려든다.


해가 저물 무렵, 대왕암으로 가는 50m 길이의 대왕교에 동백과 진달래와 개나리 꽃잎 색 불빛들이 서서히 피어난다. 이 대왕교는 지금의 장려한 출렁다리가 생겨나기 훨씬 전의 첫 출렁다리였다. 골리앗 크레인에 쓰는 와이어에 나무 바닥을 잇대어 일일이 수작업한 다리였단다. 세찬 바닷바람에 17년간 출렁댔을 상상을 하니 난데없이 등줄기가 써늘해진다. 1978년에 다리를 놓았으니 그 이전의 대왕암은 뱃길이나 해인들의 수영 실력이 아니고는 닿을 수 없는 섬이었다. 그 후 1995년과 2015년, 철제 아치교 형태로 두 차례 변모했다. 핫 플레이스가 된 현재의 출렁다리 덕에 언젠가는 5,000만 국민이 이 다리를 건널 날이 올 것이다. CCTV가 24시간 눈을 번뜩이는 해맞이광장에서 대왕암 꼭대기에 이르는 길은 하이힐로도 거뜬할 만큼 반듯하게 닦여 있다. 파도와 바람의 세월에도 용의 자태를 간직한 바위 정상에 내가 선다. 수평선을 휘돌아 온 상서로운 기운에 내 몸이 펄럭인다. 오롯이 내 쪽으로 불어오는 사방팔방의 바람을 품 안으로 맞이한다. 해가 떠난 방향에서는 울기등대가 흰 매화 꽃잎 같은 불빛을 깜빡인다. '울산의 기운' 울기가 내뿜는 포말이 93만㎡(28만 평) 넓이와 46m 높이의 등대산, 1만5,000그루의 해송, 용이 떨어지면서 물들인 기암괴석 붉은빛, 그리고 대왕암에 오른 이들의 감성으로 뭉쳐 동해의 파도를 끊임없이 철썩인다.



저것 봐/ 저 파도 좀 보아// …/ 대왕암 끌어안는 물결 좀 보아// 그 바위 사랑한 뒤 물러나는/ 하얀 저 포말들 좀 보아// 등대가 굳이 비추어 주지 않아도/…/ 흐른다네, 흐르다 저리 부서진다네// 벗이여,/ 우리 이마께에 흰 머리칼 날리는/ 서러운 그 세월에 몸을 떨 즈음// 어둠 속 해송들이 손잡고 굽어보는/ 그 어둠 잘게 바수는// 저것 좀 봐/ 저 서러운 그리움 하나 보아 


 - 신승운 '밤바다 산책 - 울기등대에서' 부분



대왕암공원의 새로운 명소가 된 길이 303m의 출렁다리. ⓒ울산신문 자료사진


# 파도와 바람이 애끓는 슬도와 40분 거리


문무대왕비가 호국룡으로 스며든 물길, 용추수로는 미지의 깊이로 짙푸르다. 해 뜰 때마다 붉은 세상이 되는 해맞이광장에 서서 대왕암을 돌아본다. 화려한 빛으로 치장한 거대한 용이 꿈틀거린다. 용추암에 터를 잡은 검은 고양이들은 오색 빛으로 승천하는 용을 밤마다 보았겠다. 이제 네 갈래 길 중 한 곳으로 들어야 할 때다. 낮은 식탁과 빈 해산물 통이 즐비한 기암괴석 사이의 해녀포차는 문 없는 문이 닫힌 길. 슬도로 가는 남쪽 바닷가 길은 걸어서 40분 거리다. 이름만으로도 궁금해지는 용디이목, 샛구지, 과개안(너븐개), 몽돌해변을 거쳐 고동섬 전망대와 노애개안을 지나 배미돌을 바라보면 새끼 업은 귀신고래 동상이 슬도교에서 손짓한다. 일출과 석양이 넋을 빼앗아가는 너럭바위 시루섬. 바위 구멍 120만 개를 들락거리는 파도와 바람이 애끓는 거문고 가락을 연주하는 파도 빛 술잔 섬. 소리 체험관과 성끝마을을 둘러보고 카페 창가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모든 바다가 내 것이 되는 거북섬. 슬도는 이름도 갖가지다. 북쪽 바닷가 길은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낸 전설을 들으며 30분을 걷는 전설 바윗길이다. 사근방, 고이, 탕건암, 남근암, 넙디기 바위를 울퉁불퉁 따라 걷다가 현대중공업 크레인과 민섬을 부딪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용 한 마리가 꼬리를 숨기고 있을 듯한 용굴도 고개를 한껏 디밀어 내려다본다. 출렁다리와 해변과 빌딩이 소나무 사이로 펼쳐지는 공간은 수루방과 햇개비에 연결돼 있다. 바깥막구지기를 지나고 대왕암계단을 하나, 열, 서른… 세다 보면 널따란 별빛광장과 일산해수욕장에 이른다. 출렁다리가 펼치는 무지개 쇼 관람 일등석은 신발 벗어두고 퍼질러 앉는 모래밭이다. 공원 중앙을 지나는 사계절길은 벚꽃, 수국, 맥문동, 꽃무릇, 동백, 수선화들이 계절을 알리는 꽃길로 15분 산책이면 알맞다. 지금은 해송 키만큼 자란 동백나무가 통째로 내려놓은 마음들로 점점이 붉다. 빛깔보다 향이 짙어지는 이 저녁엔 어쩌면 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 나는 송림길로 들어선다. 울기등대에서 관리사무소까지 1만2,000그루의 해송이 솔향 가득한 피톤치드를 뿜어낸다. 행여 풀꽃이라도 밟으랴 살짝 늦춘 걸음이 자꾸만 바스락거린다. 이곳의 소나무는 러일전쟁(1904~1905) 당시 러시아 함선 견제를 위해 주둔했던 일본해군이 심었다. 울기등대와 더불어 100년이 훌쩍 넘었다. 



(상략) 낯선 새잎들 바람에 덤벙거리는 나무 아래/ 누렇게 비워진 초록의 흔적 가벼울수록 빛이 곱다// 뿌리를 향해 고개 숙이고 귀 기울이면/ 사철 푸른 거름이 되어 줄 텐데// 아무리 끝이 날카로운들 제 몸끼리 아플까 /아무리 아픈들 제 몸을 버릴까// 솔잎은 스스로 터득하지 않는다/ 뿌리로부터 전송되고 있는 따끔한 가르침으로/ 아직까지 푸르러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이치도 다 이런 속성이다 


 - 윤향미 '소나무 아래를 지나다' 부분



대암암공원을 품은 동구의 전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 1만2000그루 해송이 뿜어내는 솔향 가득


3월 초에 친구들과 다녀온 베트남 남부의 달랏 소나무(적송)가 떠오르는 길. 달랏의 중심가인 쓰엉흐엉(우리말로 춘향) 호숫가에도 해발 2,169m의 랑비앙산 왕복길에도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가이드는 1940~1945년 사이에 일본군이 심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달랏처럼 연중 15~22도 기온을 유지하는 지역마다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다고. 중일전쟁(1937~1945년) 당시 베트남에 진출한 일본. 프랑스 지배하에서의 베트남과 일본은 우호적인 관계였다고 하나, 베트남 국토에 굳이 소나무를 심은 까닭이 뭘까. 러일전쟁 승리 이후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일본은 그들의 전쟁 군수물자에 쓸 송탄유 제작을 위해 전국의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한다. 국립산림과학연구원의 2019년 조사에 의하면 1934~1943년까지의 송진 채취량은 9,539톤(조선총독부 통계연보). 발견된 송진 피해 소나무는 전국 43곳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내 키 높이에서 뾰족하게 돋아난 소나무 새순을 어루만져본다. 제 몸에 돋은 날카로움은 아프지 않다. 그 날카로움을 어루만지는 나그네의 손길이 생겨나는 것일 뿐.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 현대조선소 건립으로 잊힐 뻔했던 울산 낙화암


공원 입구의 '미르놀이터'에는 7m 높이의 용을 미끄럼 타는 아이들 함성이, '미로원'에선 테세우스를 꿈꾸는 아이들 함성이 드높다. 어린이 테마파크인 '대왕별 아이누리'는 문을 닫아걸고 고요에 들었다. '캐라반 캠핑장'에선 볼락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겠다. 주황색 지붕 일색의 반원형 상가 불빛이 따사롭다. 주차장으로 가기 전, 오랜 세월 간 미포만의 기암절경이었다는 '울산 낙화암' 쌍바위와 암각석 앞에 서 본다. 1970년 현대조선소 건립으로 잊힐 뻔했던 울산의 낙화암. 우여곡절을 겪고서 2017년에 이곳으로 온 일부의 바윗돌이다. 낙화암 석벽에 새겨져 있던 시 한 수가 물에 빠져 죽은 어린 기생의 넋인 듯, 이끼 낀 바윗돌이 문득 흰 치마를 두른다. 속절없이 터져 나오는 이것은 시가 아닌 중얼거림일지니. 



…꽃은 옛날 어느 해에 졌다가 봄바람이 불면 다시 피어나는가 봄은 와도 그 사람 보이지 않고 자줏빛 달빛 아래 덧없이 서성이는 한 사람 누구인가. 


김려원 

news@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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