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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May 20. 2023

시를 품은 울산 12경-10.태화강국가정원과 십리대숲

철새들 오로라 한 입씩 물고 온듯 알록달록 대숲 환상의 별밤


주말ON  U&U TV  시를 품은 울산 12경     

         

기자명 김려원

입력 2023.05.18 20:16


철새들 오로라 한 입씩 물고 온듯 알록달록 대숲 환상의 별밤


[주말ON-김려원 시인의 시를 품은 울산 12경]

 10.태화강국가정원·십리대숲



강물 내려다보는 은하수다리
왕이 찾아 시 읊었다는 태화루
산책길 웃음꽃 강북 십리대숲
철새 깃드는 강남 삼호대숲
수백여 생명체 노니는 철새공원
오색칠색 꽃양귀비 물결까지
동해로 가는 물길 백리따라
굽이굽이 장관 흘러가네


어둠이 찾아오면 십리대숲 길은 형형색색 반딧빛 조명이 연출하는 은하수길로 새롭게 탈바꿈한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 이랑이랑 햇빛은 갈라지고, 보리는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나고, 꾀꼬리는 혼자 날 줄 몰라 암컷은 쫓기고 수컷은 쫓고…" 


  김영랑의 시 가락에 모란이 마구 피는 오월. 천이랑 만이랑 어디로든 발길 내면 바람과 해, 꽃과 풀, 마을과 들길과 새들의 노래가 안겨드는 오월. 달력엔 동그라미 친 날이 많기도 하여라. 가족 나들이를 건너뛰면 왠지 섭섭한 달. 우리 가족도 나들이에 나섰다. 북적이는 식당에서 능이백숙을 먹고, 60년 전에 지은 취수탑을 리모델링한 '태화강전망대 회전카페'로 간다. 커피와 다정과 수다를 실은 유리 원통이 천천히 돌아간다. 테이블마다 속삭임들이 눈 아래 저 아늑한 풍경을 음미한다. 가만히 앉았는데도 굽이치는 강물이 둥글게 감아 돈다. 잔잔한 강물은 가슴마다 일렁이고, 처음 앉은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딱 한 시간. 엘리베이터가 멈춰 선다. 카페로 들어오는 한 가족을 보곤 약속이나 한 듯 우리가 일어선다.  


 '은하수다리'로 차를 몬다. 삼호동과 태화동을 잇는 '국가정원교' 아래의 인도교, 강물이 훤히 보이는 유리 바닥을 걷는다. 3년 전 여름까지 태화강전망대 앞에서 강을 건너 주던 나룻배도 돌아오면 좋으련만. 견우직녀가 은하수 강에 걸린 오작교에서 해후하는 여름밤엔, 하늬바람 타고 지상의 이곳도 다녀갈 테지. 대숲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양안을 따라 시원하게 나 있다. 걷고 달리는 사람들의 물결 같은 표정이 푸르디푸르다. 날마다 일출과 일몰을 끌어당기는 강의 얼굴이 해를 닮아 훤하다. 울주군 백운산 탑골샘을 솟아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 동해로 가는 물길은 46.02km, 자그마치 백 리. 마라톤에 손색없는 코스다. 


…저물 무렵 태화교 함께 건너던 당신/ 십리대밭 너머 가지산 쌀바위/ 온통 불 지르던 일몰 끓는 강물 보며/ …알아버렸네요 생의 벼랑 아득한 산정/ 가장 애리고 서러운 날들부터/ 물수제비뜨듯 끊어 던지고/ 손 털고 가는 저 강물 속을//…// …웅크릴 대로 웅크리다 보면/ 세상 가장 팽팽한 눈부심으로/ 새벽이 끓어오르는 걸/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던/ 강물마저 부여안고/ 세상 건너 세상이던 물안개/ 마침내 십리대밭 너머/ 저 청아하고 유유한 아침이던 걸…  

 -안성길 '강물이 흘러가는 법' 부분  


   오산(자라 모습의 산) 만회정과 관어대를 지난다. 만회정은 1600년경 세워졌다가 소실되어 2011년에 새로 지었다. 정자를 돌아드니 녹음 짙은 대숲의 서걱거림이 번져난다. 오래전 울산엔 도심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고, 강이 형성된 이후에는 저지대 특성상 범람이 잦았다. 범람을 막고자 이곳 대나무 자생지에 대나무를 더 심었다는 기록이 '학성지'에 나온다.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심어온 대나무가 지금의 대숲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강변 대나무숲은 태화강의 중심인 태화교와 삼호교 사이 강변 십 리에 걸쳐 있었다. 개발을 거듭하면서 현재는 주요 대밭 14만2,060㎡를 자원으로 관리 중이다. 십리대숲에 조성한 '은하수길' 6백여 미터는 LED반딧불조명에 반사된 대나무와 댓잎이 환상의 별밤을 연출한다. 견우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순간이 저럴까. 철새들이 북극의 오로라 입자를 한 입씩 물고 온 걸까. 욕망의 실타래를 색색이 뽑아보면 저러한 몽환일까. 



태화강변 도심 인근에 조성된 태화강국가정원과 울산시가지의 전경. 김동균기자 justgo999@


 까만 눈과 코가 별빛 같은 '비숑'을 안은 부부가 지나간다. 강북의 십리대숲이 사람과 강아지가 피우는 웃음꽃 코스라면, 강남의 삼호대숲은 철새와 텃새가 깃 접기 좋은 곳. 여름 전후로는 백로 떼 8,000여 마리가, 겨울 전후로는 10만여 까마귀 떼가 댓잎 속으로 든다. 지금은 백로들의 천국이다. 


 "철새에게 받는 피해도 있지만, 생태관광자원인 철새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가요. 올바르고 정확한 지식 전파를 위한 아카데미도 개최하고요. 새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가치의 대상임을 알리려 노력합니다." 조류생태원을 마주한 자리에서 새들과 동고동락하는 '철새홍보관' 담당자의 말에 웃음이 난다. 두어 달 전, 차 앞 유리에 실례하고 내뺀 까마귀를 흉본 기억이 나서다. 산책길에 잠시라도 홍보관을 둘러본 이들은 아마도, 새를 보는 눈이 더 깊어졌을 것 같다. 


 '태화강철새공원'은 너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 등의 수백 종 생명체가 노니는 12만5,000㎡의 조류서식지보전지구다. '숲속·보라·은행나무정원'도 자연미 넘치는 산책로다. 추위와 더불어 떼까마귀·갈까마귀 무리가 일대의 전깃줄을 잠식하거나, 떼 지어 공중을 선회하는 장관은 십수 년 전부터 울산을 새롭게 이미지화했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친구여!/ 나는 어쩌면 그대들에게/ 미안하이.// 내가 그대들에게 들려줄 노래사// 그지없건만/ 오직 내 가락이 이뿐이라서/ 미안하이.// 까옥 까옥 까옥 까옥" - 구상 시인이 40년 전에 노래한 '까마귀 1' 을 우짖으며 늦가을의 귀환을 기약한 까마귀들은 지금쯤, 시베리아와 몽골 벌판을 무대로 군무를 펼치겠다. 


 '대나무 테마정원'을 돌아보고 '자연주의 정원'을 거닌다. 최고의 자연주의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 작가가 여러해살이 초화류로 연출한 계절 정원. 까다롭게 작품을 선정한다는 그가 울산까지 온 까닭이 있다. 강 하류 2km를 죽은 숭어가 뒤덮었던 1996년 그날처럼, 급속한 산업화로 태화강은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울산시와 시민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은어와 연어들이 뛰놀게 된, 그러한 울산의 저력에 감동한 것이다. 놀이터의 신나는 아이들과 푸른 '국화정원'을 따라 걷다 샛강 돌다리를 건넌다. 



군락을 이룬 태화강국가정원의 꽃양귀비.  김동균기자 justgo999@


 잉어 두 마리가 갑자기 튀어 올라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보니 오색칠색꽃바다 아니, 오욕칠정꽃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서역에는 사람을 환생시키는 서천꽃밭이, 지상엔 태화강국가정원꽃밭이 있을 터. 꽃양귀비 뜨락이 펼쳐둔 크기만큼 입이 떡 벌어진다. 


"구름은 그대 의상 꽃은 그대 얼굴, …요염한 꽃가지 이슬에 젖어 향기 풍기고, 무산의 선녀는 임금의 애만 태우네. 봄바람은 그지없어 모든 시름 녹여버리고…" 


  천삼백 년 전, 당나라 현종의 애첩 양귀비를 위해 이백이 지은 시다. 꽃양귀비는 양귀비를 닮은 개양귀비, 물감양귀비, 애기아편꽃. 중국에선 우미인초라 한다. 기원전 2백 년경 해하강에서 한나라와 마지막 접전을 치른, 초나라 장군 항우의 연인 이름이 우미인이다. 우미인을 사랑한 항우는 전쟁터에도 데리고 다니며 보호한다. 한나라 장군 한신의 심리전인 사면초가(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구슬픈 노래)에 전세가 기울고, 항우는 우미인의 마지막 술잔을 받고 자신의 일생을 시로 읊는다. 우미인은 연인의 마지막 술잔을 받은 후 단검으로 자결한다. 이후 그녀의 무덤에 양귀비꽃이 피었다는 이야기가 '사기'에 전해진다. 나라를 말아먹은 양귀비는 아편 양귀비, 사랑 하나에 목숨을 내놓은 우미인은 아편 없는 꽃양귀비로 미인의 이름을 남겼다. 


 16만㎡의 '초화원'엔 꽃양귀비, 작약, 수레국화, 청보리, 금계국, 안개초 들이 오월의 태화강 물결에 배경색을 입힌다. 태화강과 십리대밭을 품은 '태화강국가정원'은 하늘에서 보면 백로의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순천만에 이은 두 번째 국가정원이며, 면적 83만5,452㎡로 축구장(7,140㎡ 기준) 118개, 여의도공원(22만9,539㎡ 기준)의 3.6배다. 


 강북의 태화지구는 '만남의광장'과 '느티나무광장'을 잇는 '느티나무길'이 정원의 중심부로, 생태·대나무·계절·수생·참여·무궁화 6개 정원을 주제로 삼았다. '작약원' '초화원' '소풍마당' '야외공연장'이 '시민·작가·모네·학생·U5정원'을 둘러싼 형상. '오산광장'과 '오산못무지개분수'와 '대나무생태원'을 비롯해, '오산못'에서 발원하는 샛강 위 '오산·느티·새터·여울다리' 산책도 재미난다.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색색의 작약 향을 누린 후, 오랜 세월 간 여러 묵객과 왕들이 찾아 시를 읊었다는 '태화루'로 향한다. 자장율사가 불력으로 지었다는 태화사의 누각이 절벽 위에서 위풍당당하다. 태화강도 당시에 지어진 이름이다. 태화루는 신라 647년에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돼 2004년에 다시 지었다. 신을 벗고 누각에 오르면 스치는 바람도 등 뒤로 시끌벅적한 태화장터도 그저 시의 물결이다.


 강 너머의 둔치와 울산의 상징인 백로·고래를 형상화한 '십리대밭교'는 알록달록깃발로 출렁인다. 5월 17일부터 21일까지의 '태화강국가정원 봄꽃축제' 물결이다. 이제 마지막 코스다. 우리는 태화강이 숨기고 있는 비밀 공간 '태화강동굴피아'로 간다.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김려원 news@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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