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뭇잎 Mar 12. 2024

초보 책방지기의 7일 차 소감

[Web발신]

“어머님, 안녕하세요? 어제 보내드린 e알리미 알림장 아직 열람하지 않으신 것으로 나오기에 연락 드립니다. 담임 드림


같은 메시지를 3일 연달아서 받고 있다. 이 어머니 왜 이러냐고 하실지도. 부천으로 출근하던 2023년은 아침 7시면 집을 나섰다. 오전 7시 15분은 내가 정해놓은 마지노선. 15분 지나서 나가면 정해진 출근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책 1권을 에코백에 넣은 후 감은 머리카락도 덜 말린 채 서둘러 나갔었다. 아침이 있는 삶을 원했다. 인천 책방이 모여있는 동네에 가게를 얻지 않고 집 근처에 책방 자리를 마련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집안일을 대충 마치고 예정된 오픈 시간 보다 일찍 문을 여리라 계획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책방에서 글쓰기로 아침을 맞이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환상에 불과했다. 


일단, 폐렴에 걸린 막내는 3월 개학 날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침에 병원 문 열자마자 진료받고 허겁지겁 책방으로 아들과 함께 출근했다. 책방 아들이 책방에서 책은 안 보고 넷플릭스 틀어달라고 하는 바람에 30분 보는 걸로 합의 보느라 힘을 뺐다. 아들에게 물, 간식을 대령한 후 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켰다. 고심하며 고른 책방 조명에 불이 들어올 수 있도록 전원을 올렸다. 낮이라 조명을 켜지 않아도, 온풍기를 틀지 않아도 어둡거나 춥지 않다. 다만, 밖에서 보았을 때 따뜻한 곳이라는 인상과 들어왔을 때의 온기를 위해서 전기세와 난방비 걱정은 잠시 접기로 했다. 문을 열어 둔 채, 어젯밤 퇴근하면서 껐던 전기코드 온 스위치를 눌러 인터넷, 신용카드 단말기, 블루투스 스피커를 켰다. 아직 신용카드 단말기 버튼 누르는 게 어색하여 혼자 ‘10원’을 눌러 오류 없이 결제 시스템이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의자를 빼고 무선 청소기를 돌린 후, 문에 붙은 팻말을 ‘OPEN’이 보이도록 돌리면 책방 운영 일과 시작!


책방 중간에 놓은 원목 탁자에 필사를 위한 원고지 공책에 시를 필사하는 걸로 본격적인 내 루틴에 시동 걸어본다. 다른 동네 책방, 책방 스테이에 방문했을 때 볕 잘 드는 자리에 마련된 작지만 오붓한 필사 공간이 맘에 들었다. 우리 책방에도 공책과 펜을 놓았다. 독서대에는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준비했다. 짧은 문장이지만 삶을 관통하는 멋진 문구가 그림과 어우러져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에게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그런데, 3월 2일 정식으로 책방 문을 연 지 일주일 동안 필사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요즘 읽고 있는 안미옥 님의 시를 한 편씩 쓰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예쁜 원고지 공책 한 켠을 채워주면 좋으련만. 나 역시 필사하면서도 글에 온전히 집중하기란 어렵다. 2024년 내 본캐인 책방 주인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머릿속의 80%는 책방 일이다. ‘어떻게 홍보할까, 방치해놓은 블로그를 살려 책방 소식을 써야 할 텐데.’ 행동으로 되지 않는 걱정을 매일 하는 중이다. 나머지 20%는 삼 남매 끼니 걱정이다. 학교 다녀온 후,  학원 가기 전에 아이들을 먹은 간식을 배달의 민족으로 주문할까, 아니면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할까. 저녁에 퇴근하면 무엇을 먹을까. 당췌 이 놈의 밥 걱정을 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직장에 다닐 때 3월은 정말 바쁜 한 달이었다.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참는 일이 다반사였다. 직장 내에서는 하루에 만 보씩 걷는 날도 많았다. 현재 책방 규모가 작고 좁기도 하지만, 책방을 차린 후부터는 그렇게 걸을 일이 없다. 그리고, 손님도 없다. 생각해보면 크게 시간에 쫓길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왜 퇴근 후에 쓰러지는지. 동네 주민이 여전히 모르는 책방이고, 이제 막 시작하는 자영업자여서 그런지 종일 책방 꾸리기에 골몰하고 있어서 그런가. 다른 일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몇 줄 쓰다가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글쓰기, 시간을 맞춰서 무언가를 제출해야 하는 일을 놓치기 시작했다.    

 

책방 업무와 개인적인 일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3월이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 제법 기온이 올라가 따뜻한 3월 오후, 누군가 문을 열고 빼꼼 나를 보며 "여기 책 모임 신청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물어봐 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방을 뭐하러 여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