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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줌 Dec 06. 2024

브런치 활동중단 사유서

그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정말 오랜만의 글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발행한 것이 8월이었으니 그새 네 달이 흘렀다. 에세이 기준으로는 여섯 달이다. 그동안 내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큰 변화를 맞았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자. 아빠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실 뻔했고, 양육비가 밀려 이행관리원과 함께 절차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공무원 시험을 보았다. 운 좋게 필기에 붙었고 면접을 거쳐 최종합격에 이르렀다. 내년 1월부터 나는 서울시 모 자치구에서 근무한다. 


 현재는 새로운 일과 삶을 준비하며 숨 고르기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사 준비와 아이 초등학교 입학이 맞물려 있어 알아볼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누구에게나 삶이 요동칠 때가 있는 법. 상황이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하나씩 알아보고 침착하게 풀어나가면 된다. 뒤엉킨 실타래도 매듭 하나부터 차분하게 풀면 그다음 매듭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가. 그런 마음으로 내 앞에 주어진 수많은 이슈들을 헤쳐나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엊그제 법정한부모 적합 판정을 받았다. 문제가 됐던 경차를 보내주고 요건에 맞는 세단으로 차를 바꾼 뒤 접수한 지 세 달만이다. 문자를 보는데 살짝 울컥했다. 한부모 수당 월 20여만 원. 적은 금액이지만 큰 도움으로 다가온다. 그 외에도 눈에는 보이지 않은 혜택들이 있다. 이런 지원들을 안전그물 삼고 내 힘으로 잡은 직장을 든든한 발판으로 삼아 나는 일어날 것이다. 어렵게 법정한부모가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득과 자산 초과로 법정한부모 자격이 박탈되는 그날을 꿈꾼다. 

 

 아빠가 새벽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엄마의 카톡을 받고도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일단 고비는 넘겼으니 걱정 말고 출근하라는 엄마의 말에 일단 알겠다 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한 5분이나 갔을까. 운전 중에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져서 나도 모르게 몇 초간 소리 내어 울었다. 그 흐려진 시야로 간신히 회사에 도착했고 부서장에게 상황을 말했다. 아빠가 쓰려지셔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다행히 바로 출발할 수 있었지만 가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병원에 도착하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런 위급상황이 언제든 또 생길 수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하는 현타가 세게 왔다. 직장 때문에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이런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임을 새삼 무겁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결혼 전에도 해외에서 혼자 몇 년 간 지내본 적도 있어 타지에서 사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었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야 왜 가족과 친구들 곁에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현실적으로 이사가 어려웠다. 이혼 후에는 직장 문제로 타지에 사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어느 정도 체념했었다.


 그런데 이번 아빠의 입원 사건이 내게는 부모님의 나이 듦에 대하여 피부로 와닿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마음속에만 있고 용기 내지 못했던 공무원 시험 도전도 실행할 수 있었다. 작년에도 접수만 해놓고 아이가 아파서 시험날 응시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시험장에 갔고 시험을 봤고 합격을 했다. 


 며칠 전 25년 1월 중순쯤 임용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본가에서 멀지 않은 자치구로 배정을 받아 일단 본가로 들어가 몇 달 지낼 예정이다. 나는 아이 양육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부모님을 근거리에서 케어할 수 있게 됐다. 아이는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불과 네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삶의 변화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이런 변화를 일구어냈다는 사실이 참 기쁘고 뿌듯하다.


 연말연초에 부모님과 우선 필요한 짐들만 챙겨 작은 이사를 한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게 서른한 살 즈음이었으니 거의 10년 만의 합가이다. 괜찮을지 모르겠다.(?) 쓰다 보니 걱정도 슬쩍 올라온다. 지금 아니면 언제 부모님과 또 지지고 볶아 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잘 지내보아야겠다. 당장 1월에 '아, 못살겠다!' 하는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펼쳐질 네 가족의 합가 이야기와 나의 공무원 생활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소소하게 나누어볼 생각이다. 재미난 이야기가 될지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탕이 될지는 겪어봐야 알 것 같다. 어떤 맛이든 분명 나와 우리 가족의 일상이 더욱 풍성해질 것만은 분명하니까.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한 여섯 달간 내게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얼마 전 내린 폭설처럼 하늘에서 내 머리 위로 쉴 새 없이 알아볼 것과 결정할 것들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괴로움보다 즐거움으로 다가왔던 건 분명 나와 아이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 덕분이었다. 최근에 인스타였나 SNS 어딘가에서 본 짧은 영상에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들려준 말이 있다. 그 한 마디가 무지막지 격렬한 포옹이 되어 내 가슴에 와락 안겼다. 갓 마흔이 된 그녀에게 아는 언니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한다. 


 "금희야, 지금부터가 진짜 좋을 거야!"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그래, 지금부터가 진짜 좋을 거야. 다른 말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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