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니버서리 Jun 29. 2024

죽고 싶다는 사람을 살리는 방법

목을 건다




 우리말에 목숨을 건다는 표현이 있다. 내 목을 걸지 하는 말도 있다. 내 생명을 무언가에 바치겠다는 의미로 통한다. 국어사전에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다 내지 그럴 각오를 하다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 관용구에서 '걸다'라는 동사를 '물건과 물건 또는 사람이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다'라는 본래의 뜻 그대로 해석해 보면 어떻게 될까?


 두 존재가 서로 떨어지지 않게 '목을 건' 장면을 떠올려 보자. 위에 있는 사진처럼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끌어안은 모습을 상상해도 좋다. 이렇게 부모가 아이를 꼭 껴안을 때면 자연스럽게 목덜미를 서로 맞대게 된다. 기린처럼 긴 목은 아니어도 서로의 가장 부드러운 살결을 편안하게 맞댈 수 있다는 건 생각해 보면 매우 특별한 일이다.


 우리 몸에서 목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연약한 신체부위다. 그래서 목과 관련된 우리말 표현도 많다. 사극에서 자주 나오는 내 목을 베시오라든가 내 목이 붙어있는 한 아니 되오 같은 표현만 봐도 목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생명을 뜻하는 우리말이 목숨이겠는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목숨이란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이라고 나온다. 목에 있는 호흡기관을 통해 들숨과 날숨이 원활히 소통되어야 비로소 우리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목은 곧 우리의 숨이고 생명이다. 신체기관 중 가장 중요한 뇌, 심장, 폐로 이어지는 혈관과 신경들이 활발히 지나다니는 생명의 고속도로이다. 그 생명의 길을 맞대는 행위는 그래서 특별하다. 서로의 호흡과 맥박이 얇은 피부를 사이에 두고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무런 경계 없이 서로를 믿고 내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만에 하나 상대가 딴맘을 먹고 공격을 하게 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런 급소를 드러내고 서로 맞대는 순간, 두 존재는 진정한 소통을 한다. 휴대폰이 무선 충전기의 단자와 맞닿으면 전기가 흘러 들어가듯 너와 내가 하나로 연결되는 특별한 교신의 순간이다.


 부모와 자식 간이든 사랑하는 연인 간이든 주인과 반려동물 간이든 모두 공통되게 성립하는 이야기다. 이 세상에 내 가장 약한 부위인 목을 무방비 상태로 노출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딱 하나면 충분하다. 그 한 명만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그걸로 사람은 살 수 있다. 존재의 소멸 앞에서 죽음을 향해 빨려 들어가던 사람도 이런 존재를 만나면 눈이 떠지고 귀가 트인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며 정신을 차린다. 비로소 다시 살아갈 힘이 얻는다.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쌍용차, 세월호 등 우리 사회 곳곳의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치유에 힘썼던 정혜신은 저서 <당신이 옳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중략)...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있어야 사람은 그다음 발길을 어디로 옮길지 생각할 수 있다. 자기에 대해 안심해야 그다음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중략)...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p.56-57)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상대를 위한답시고 섣부른 조언을 시도하기보다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을 거야.' 하고 굳건히 믿어주는 일.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와 거적때기들 다 걷어내고 그냥 너라는 존재 자체에 집중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는 일 말이다.


 나는 우리 가족과 친구 등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사람이었을까? 


 솔직히 아니었다. 상대가 먼저 기대온 목을 편히 받아주지 못했다. 돕고 싶은 마음만 앞서 되지도 않는 충고를 늘어놓은 적도 많다. 반대로 내가 그런 공감을 바라고 먼저 내 약한 목을 내밀었다가 평가와 조언으로 시작되는 상대의 반응에 상처받고 마음을 닫아버린 적도 있다. 서로의 목을 같은 마음으로 건다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분명하다. 한쪽의 진심을 다른 한쪽이 같은 밀도와 농도로 받아야 서로의 색감이 조화롭게 섞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러한 '내 편 인증'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타게 갈구해 왔던 것 같다. 대놓고 표현은 못하면서 서툴고 미성숙한 방식으로 투정과 짜증을 섞어서. 결국 '네가 옳아. 나는 그렇게 믿어.'라고 말하는 믿음의 눈빛과 언어를 갈망했던 것이리라. 그런데 정작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다. 바라기만 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혼자 외로워했다. 


 나도 이제 내 가장 소중한 생명의 길을 아무 의심 없이 맞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산소 호흡기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고마워. 나도 너에게 내 목을 걸게.' 하는 다정한 눈빛과 말 한마디가 생명을 놓고 싶은 순간의 누군가를 살릴 산소 한 모금이 될지도 모르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