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건다
우리말에 목숨을 건다는 표현이 있다. 내 목을 걸지 하는 말도 있다. 내 생명을 무언가에 바치겠다는 의미로 통한다. 국어사전에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다 내지 그럴 각오를 하다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 관용구에서 '걸다'라는 동사를 '물건과 물건 또는 사람이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다'라는 본래의 뜻 그대로 해석해 보면 어떻게 될까?
두 존재가 서로 떨어지지 않게 '목을 건' 장면을 떠올려 보자. 위에 있는 사진처럼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끌어안은 모습을 상상해도 좋다. 이렇게 부모가 아이를 꼭 껴안을 때면 자연스럽게 목덜미를 서로 맞대게 된다. 기린처럼 긴 목은 아니어도 서로의 가장 부드러운 살결을 편안하게 맞댈 수 있다는 건 생각해 보면 매우 특별한 일이다.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중략)...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있어야 사람은 그다음 발길을 어디로 옮길지 생각할 수 있다. 자기에 대해 안심해야 그다음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중략)...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p.56-57)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상대를 위한답시고 섣부른 조언을 시도하기보다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을 거야.' 하고 굳건히 믿어주는 일.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와 거적때기들 다 걷어내고 그냥 너라는 존재 자체에 집중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는 일 말이다.
나는 우리 가족과 친구 등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사람이었을까?
솔직히 아니었다. 상대가 먼저 기대온 목을 편히 받아주지 못했다. 돕고 싶은 마음만 앞서 되지도 않는 충고를 늘어놓은 적도 많다. 반대로 내가 그런 공감을 바라고 먼저 내 약한 목을 내밀었다가 평가와 조언으로 시작되는 상대의 반응에 상처받고 마음을 닫아버린 적도 있다. 서로의 목을 같은 마음으로 건다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분명하다. 한쪽의 진심을 다른 한쪽이 같은 밀도와 농도로 받아야 서로의 색감이 조화롭게 섞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러한 '내 편 인증'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타게 갈구해 왔던 것 같다. 대놓고 표현은 못하면서 서툴고 미성숙한 방식으로 투정과 짜증을 섞어서. 결국 '네가 옳아. 나는 그렇게 믿어.'라고 말하는 믿음의 눈빛과 언어를 갈망했던 것이리라. 그런데 정작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다. 바라기만 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혼자 외로워했다.
나도 이제 내 가장 소중한 생명의 길을 아무 의심 없이 맞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산소 호흡기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고마워. 나도 너에게 내 목을 걸게.' 하는 다정한 눈빛과 말 한마디가 생명을 놓고 싶은 순간의 누군가를 살릴 산소 한 모금이 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