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롬톤의 특허 절벽
안녕하세요. ABC특허법률사무소 이호준변리사입니다.
혁신적인 기술로 시장을 개척한 기업이 있습니다. 그 기술의 핵심은 특허로 단단히 보호받고 있죠. 하지만 모든 특허에는 끝이 있습니다. 출원일로부터 20년. 이 시간이 지나면 기술은 공공의 자산이 되고, 시장에는 저렴한 복제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는 이 현상을 '특허 절벽(Patent Cliff)'이라 부르며, 종종 기업의 위기와 동일시합니다.
영국의 프리미엄 접이식 자전거 '브롬톤(Brompton)'의 이야기는 이 오래된 통념에 완벽한 반례를 제시합니다. 200만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자전거인 브롬톤이 특허 만료에 따라 100만원 이하의 유사 제품들의 공세를 겪고 있습니다. 브롬톤의 최근 이익이 급락했따는 소식은 특허 만료에 따른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착시입니다. 브롬톤의 핵심 3 단 폴딩 특허가 만료된 것은 무려 26년 전인 1999년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브롬톤은 어떻게 특허 없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장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며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지금의 위기는 정말 '특허 절벽'일까요? 브롬톤의 이야기는 특허 절벽은 숙명이 아니라, 특허 독점 기간 동안 무엇을 쌓아 올렸느냐에 따라 충분히 극복 가능한 파도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브롬톤의 사례는 우리에게 특허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특허의 진짜 가치는 영원한 독점이 아니라, 기업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견고한 '성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허락된 20년의 결정적인 '인큐베이션 기간(Incubation Period)'에 있다는 것입니다.
특허 제도는 발명가와 사회 간의 계약입니다. 발명가는 자신의 기술을 세상에 공개하는 대가로, 20년 동안 그 기술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부여받습니다. 브롬톤에게 1979년부터 1999년까지의 20년은 바로 이 계약이 제공한 '전략적 활주로'였습니다.
브롬톤의 역사는 창립자 앤드루 리치(Andrew Ritchie)가 1979년 10월 3일에 출원한 유럽 특허 EP0026800에서 시작됩니다.
이 특허의 핵심은 두 개의 피벗(pivot)을 이용해 뒷바퀴는 메인 프레임 아래로, 앞바퀴는 그 옆으로 나란히 접히도록 하는 독창적인 폴딩 메커니즘이었습니다. 이 기술적 해결책이야말로 브롬톤 자전거를 정의하는 핵심이었고, 1999년 10월 2일 특허가 만료되기 전까지 20년간 브롬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주었습니다.
이 보호 기간 동안, 브롬톤은 거대 자본의 즉각적인 모방 경쟁 없이 자신만의 사업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브롬톤은 다음의 자산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품질에 대한 집착: 타협 없는 품질 기준을 확립하고, '영국에서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장인정신을 브랜드의 핵심 정체성으로 만들었습니다.
브랜드 자산 구축: '브롬톤'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신뢰와 프리미엄의 가치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전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자유'라는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장 개척: 프리미엄 접이식 자전거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하고, 충성도 높은 팬덤과 커뮤니티를 형성했습니다.
이 20년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며 이익을 내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특허라는 보호막 안에서 브랜드, 품질, 고객 충성도와 같이 특허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될 무형의 자산을 키워내는 '인큐베이션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1999년, 마침내 특허가 만료되고 브롬톤의 기술은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예상대로 유사한 폴딩 방식의 자전거들이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브롬톤이 20년의 인큐베이션 기간을 허투루 보냈다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특허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브롬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인큐베이션 기간 동안 구축한 자산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의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브랜드의 힘: 소비자들은 단순히 '3단으로 접히는 자전거'를 사는 것이 아니라, '브롬톤'을 사고 싶어 했습니다. 복제품들은 기능을 모방할 수는 있었지만,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브롬톤의 신뢰와 명성까지 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끊임없는 혁신: 브롬톤은 최초의 특허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티타늄을 사용한 초경량 모델을 출시하고, 기어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원조를 뛰어넘는 제품을 계속해서 선보였습니다. 이는 복제품들이 항상 '과거의 브롬톤'을 쫓게 만들었습니다.
다층적 IP 포트폴리오: 브롬톤은 더 이상 하나의 특허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자전거의 독특한 외관을 '저작권'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유럽 사법재판소에서 역사적인 승소를 이끌어냈고, 새롭게 개선되는 부품들을 '디자인권(design patent)'으로 촘촘하게 보호하여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방어막을 구축했습니다.
브롬톤의 이야기는 명확한 교훈을 줍니다. 특허 만료는 실패가 아니라, 기업이 인큐베이션 기간을 얼마나 충실하게 보냈는지를 증명하는 '졸업 시험'과 같습니다. 특허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놓친 것입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특허가 부여한 20년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는가?"
이 소중한 인큐베이션 기간 동안, 당신의 기업은 무엇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까? 단순히 기술적 우위를 지키는 데 만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고객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브랜드와 신뢰, 그리고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가치를 구축하고 있습니까?
특허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20년의 활주로 끝에서 힘차게 날아오를 것인지, 아니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인지는 바로 그 인큐베이션 기간에 무엇을 준비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호준 변리사는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최상의 전략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히 AI, cloud computing, Date center, 소프트웨어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의 특허 전략 수립에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벤처캐피탈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타트업의 보육과 투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Series A 부터 IPO 까지 성장의 모든 단계의 전략적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