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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원 Apr 22. 2024

3. 발령이야기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자들은 모두가 공감할 '발령'시스템에 대하여.


 우리 회사는 전국에 20개 넘는 지점이 있다. 본사를 포함해 어느 지점으로 누가 언제 발령날지, 뚜껑은 11월 인사발령지를 열어보는 순간까지 알 수 없다.  이 직업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이다. 매년 인사발령의 가능성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인생의 중장기 계획을 세울 때마다 늘 번거롭다.


 아니, 장점도 있다. 나와 맞지 않는 동료, 특히 상사! 를 피할 수 있다. 지금 너무 안 맞더라도 1~2년만 버티면 대게 그 사람과의 근무는 끝이 난다. 언젠가 갈 사람이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유통업계의 발령 시스템은 소위 말해 '고인물' 방지를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국에 많은 지점을 두고 있다보니 한 점포에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있다보면,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줄어들고, 영업적으로 해이해짐은 물론, 극단적으로는 부도덕한 사고 사례까지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한 점포에서 만 3년을 채워가는 지금, 이 설명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5년 전 회사에 입사 후, 3개의 지점을 경험했다. 그 중 한 번은 아울렛에 있었다. 아울렛 중에서도 시티아울렛이라고 불리는 이 점포는, 다른 건물에 우리 아울렛이 임차해서 입점해 운영하는 형태였다. 백화점보다도 아울렛, 그 중에 프리미엄 보다도 시티아울렛은 매출 규모도 현격히 적을 뿐더러, 회사의 관심이 아주 적은 곳이다. 내가 처음 이 지점에 발령받은 시점은, 기존 운영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실험적인 운영을 시도한 첫 해였다. 막내 주임으로 이 지점에 첫 출근을 했고, 집에서 60km 떨어진 곳을 통근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내부 사정으로 약 2주를 꼬박 휴일 없이 출근을 하게 됐다. 10일차쯤, 밤 늦게 홀로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다가 메신저창의 조직도를 보게 됐다.


 회사 전체 조직도다 보니 맨 위에는 명예회장이 있었고, 그 밑에 회장, 사장단이 이어졌다. 밑으로 주욱 내려 '영업본부'를 더블 클릭했다. 서럽게도 아울렛은 여기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 더 밑, 가장 아래에 '아울렛사업부'를 클릭하자, 전국에 위치한 아울렛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래, 내가 발령받은 아울렛이 있었다. 역시 더블클릭하니, 그 아울렛의 점장, 팀장이 나왔고, 다시 더블 클릭을 하니 팀원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나는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소위 말해 '현타'가 온 시점이었다. 회사에서 내 위치는 이 큰 회사의 가장 말단이었다. 그 때가 입사한지 1년 반 정도 되었던 시점이었는데, 회사에 야속한 마음도 들고 당장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나름 열심히 회사를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상황은 뭘까? 늦은 나이에 입사했으니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발령이란 시스템이 이렇다. 온갖 생각을 다 들게 한다. 올해 나는 또 다른 지점으로 발령을 또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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