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본 누드 잡지를 가져다 내게 내민다. 시시하다. 여자 몸을 보며 떠드는 건 애들이나 하는 짓인데, 친구들은 그걸 알지 못한다. 나는 벌써 중학교 2학년, 14살이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색시를 얻어 장가갈 나이이다. 어엿한 어른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즐겨했던 놀이도 땅기지 않는다. 인목이와 NBA 농구를 흉내 내던 것도, 미용실 여자아이와 몰래했던 검은 별 놀이도 이제 흘러간 추억이 되었다. 어제는 철환이가 집에 찾아와 한참 동안 날 불렀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홀로 조용히 사색하고 싶었으니까.
확실히 2학년이 되자 많은 게 변했다. 작년 겨울 12cm 넘게 크면서 세상을 내려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땅꼬마'라고 놀려대던 애들도 이젠 날존경으로 대한다. 지난 주일 혼자 성당에서 성가 연습을 하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스스무?.. 맞아??" "안녕!"
1학년 때 같은 반인 한희였다. 교복 치마를 짧게 줄이고, 반짝이는 속눈썹을 붙이고 다니던 아이. 날 어린애 대하듯 무시했는데, 그날은 옆에 붙어 한참을 떠들었다. 그리곤 떠나기 전 민트 초콜릿을 손에 쥐어줬다. 쯧쯧, 이 빤한 속셈을 보라지. 나는 아무래도 중학생과 있기엔 너무 커버린 것 같다.
변한 건 몸뿐만이 아니다. 드러내진 않지만 내 속에는 새로운 지혜가 싹트는 중이다. 신부님의 이야기는 이제 졸립기만 하다. 세상은 말씀이 아니라 위선으로 둘러 싸인 것 같다. 주일학교 선생님은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는데, 작년까진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겉모습이 아름다워지자 성가대에 들어와라, 여름 피정을 함께 가자며 불러주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희가 준 초콜릿처럼 세상이 친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는 올봄 처음으로 꽃으로 피었다. 그럼 전에는 뭐였지? 이름 모를 고양이였나? 어른들은 진실 대신, 마음에 없는 착한 말을 하며 날 가리키려 든다. 누굴 바보로 아나. 나도 이제 다 큰 남자라, 그런 속임수엔 넘어가지 않는다고.
첫 일기를 쓰다 보니 시간이 너무 흘렀다. 벌써 밤 11시.'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몇 장 읽고 자야지. 내일은, 오늘보다 지혜로워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