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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문지기 Jan 26. 2023

3월 21일(혼자 있는 시간)

정학생의 하루

3월 21일, 바람 심함

정학 15일, 방과 후 교무실 청소 15일.

멸치를 린 결과이다. 나는 보름 넘는 자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봄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 처음 며칠은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빌려 읽었다. 시간이 많으니까, 한두 페이지 읽고 주인공 모습을 그려보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도 해보았다. 혼자서 여유롭게 지내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못가 지루해졌다. 수업 중에 몰래 보던 만화책의 재미를 따라갈 수 없었다. 역시 책을 읽고 사색하는 건, 바쁜 와중에 짬을 내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오후 2시가 되면 혼자 집에 남게 된다. 아빠는 새벽에 장사하러, 누나와 엄마도 학교와 방직공장으로 떠난다. 엄마는 11시 정도에 내가 먹을 점심을 준비한 후 나가는데, 그 밥을 먹고 치우면 딱 2시가 된다. 평일 오후 2시는 모두 죽은 것처럼 조용하기만 해서,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아침저녁으로 울어대던 옆집아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갑자기 작년 겨울 마당에서 얼어 죽은 백구가 생각났다. 내가 만든 개집에서 잠을 자다, 실수로(아니면 의도였는지..) 집 밖을 빠져나와 차가운 땅바닥 위에서 죽어가던 아이. 작은 몸 위에 하얀 눈이 쌓이고, 그 옆에는 찬바람을 막으려 입구에 세워뒀던 무거운 부동액이 쓰러져 있었다. 따뜻하게 목욕시키면 살아날까. 대야에 물을 받아 백구를 담그고 얼굴부터 다리까지 주물렀지만, 녀석은 약하게 꼬리를 몇 번 흔든 후 죽고 말았다. 힘든데 왜 꼬리를 흔들었을까. 날 좋아했던 걸까. 백구가 오늘 있었다면 마당과 뒷산을 함께 달리고, 웨하스 과자를 나눠 먹었을 텐데. 그럼 선물 같은 이 시간이 계속되길 바랐을 텐데.
 
더 이상 집에 있지 못하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자주 가던 농구장에 들렸다. 비어 있었다. 성당도 문만 열려있지 성가대 친구도 주일학교 선생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했다. 가끔 조퇴를 하고 일찍 집에 올 때와 비슷한 시간이었지만, 그때 느낀 평화로움 대신 스산한 적막만이 흘렀다.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쓸쓸함, 이 쓸쓸함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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