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종의 기원>을 만나고 나서..
19세기 박물학자들 사이에서도 팩트로 통했다는 이 오래된 명제가 21세기의 나에게는 ‘새로운 진리’로 다가와 큰 울림을 주었다. 내가 만나는 자연은 계절마다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했고,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무한한 가능성의 원천은 다름 아닌 ‘사소한 변이’라고 다윈은 말한다.
자연은 변이를 일으키는 데는 너그럽지만, 혁신을 일으키는 데는 인색하다. (…) 자연 선택은 오직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소한 변이들을 취함으로써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절대로 도약할 수 없으며, 다만 짧고 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으며 전진할 뿐이다. (다윈 <종의 기원>, 14장)
작고 사소한 변화,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서서히 찾아 들며, 생명체는 느리게 진화하고 인간의 삶은 시나브로 나아간다. 자연의 진리를 다윈의 언어로 생생하게 접하고 나니, 늘 조급했던 나의 일상이 머쓱하고,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꿈꾸었던 나의 욕심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사실은 무엇보다 위로 받는 느낌이 더 크다. 매일을 꽤 열심히 살았고, 성장하고 싶었고 또 이루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음에 부단히 상처를 받아 왔던 내게, 느리지만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고, 그 나아감이 비록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분명 내 삶에 유익한 무언가를 선물할 것이라고 속삭여 주는 듯 하다.
그렇다. 나는 자연의 일부이고, 의도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오늘도 변화하고 있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종은 멸절한다’는 다소 비장하게 들리는 이 명제 또한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씩 시도하며 내 삶에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을 비출 수 있다면, 다윈의 종의 기원 대망의 마지막 문장을 만나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 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같은 책, 14장 마지막 문장)
최재천 교수는 ‘다윈 지능’에서 ‘이렇게 엄청난 생명의 다양성이 진화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 어쩌면 이렇게도 단순할 수 있을까’하며 다윈의 진화론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심플함’이라고 말한다. 동의하지만, 한편 나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갖고 있는 더 큰 매력은 ‘주저함’ 속에 빛나는 ‘친절함’이라고 생각한다. 주장은 심플하지만, 논증의 과정은 실로 신중하고, 창조론’을 믿었던 그 시대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함께 배려가 있고, 다른 학자들이 반박할 부분에 대해 노심초사하며 해명하고, 곱씹으며 고민하고 절치부심한 흔적이 아름다운 문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게 <종의 기원>은 과학을 통해 우리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인문학 책을 만난 기쁨을 주었다, 앞으로도 이 책을 곁에 두고, 160여년 시간을 거슬러 다윈이 건내 주는 위로와 응원을 만날 참이다. 그러다 보면 ‘왕성하고 건강하며 행복한 자’를 내 안에서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자연의 전쟁이 쉴 새 없이 일어나지는 않고, 죽음은 대개 순간적이며,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왕성하고 건강하며 행복한 자가 살아남아 번영한다는 사실 말이다. (같은 책, 1장 마지막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