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겨울 어느 날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영화'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마지막 상영으로 70미리 영화관이 사라진다는 소식과 함께 광고를 보게 되었다. 너무 아쉽다는 생각에 당시 퇴근 후 추운 겨울바람을 맞아가면서 충무로에 있는 대한극장에 가서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다. 70미리 영화관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 영화에 대한 추억과 함께 하였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차경기가 등장하는 영화 '벤허'나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장면의 영화 '십계' 모두 70미리 영화였다. 두 영화 모두 우리들의 영원한 스타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았다. 찰턴 헤스턴은 이미 별이 되었다. 벤허나 십계 같은 스펙터클한 영화는 70미리로 보아야 제맛이 난다. 그런 영화관이 상업적인 이유로 멀티플렉스로 개조하기 위하여 70미리 영화를 중단한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기어이 추운 겨울 충무로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날에 본 영화 아라비안의 로렌스는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씬은 정말 70미리 영화가 아니면 생생한 장면을 실감 나게 느끼기 어렵다. 지금도 그 영화음악을 들으면 기억 밑에 가라앉았던 그때의 감흥이 올라온다.
그러한 대한극장이 멀티플렉스로 개조하였지만 그래도 영업이 되지 않아 결국 상업적인 이유로 아예 사라진다니 아쉽다. 요즘은 각 가정마다 OTT(인터넷으로 공급되는 영화를 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니 굳이 영화관이 가지 않고도 영화를 볼 수 있다.
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보편화된 이후로도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영화관에 가는 것도 번거롭거니와 좁은 의자에 앉아서 1시간 이상을 보내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다. 또 다른 이유는 나는 디지털을 좋아하지 않는다.
멀티플렉스 영화는 대부분이 디지털이다. 디지털영화 화면을 보면 왠지 눈이 빨리 피곤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디지털 사운드에 귀가 피곤해진다. 나는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에 귀가 예민해져 있다. 음악도 웬만하면 CD를 듣지 않고 주로 LP를 듣는 편이다. CD로 음악을 들으면 금방 귀가 피곤해진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뇌가 피곤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LP에서 나오는 아날로그음은 뇌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 실제로 CD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일정 주파수 범위 밖의 신호는 제거되기 때문에 뇌가 피곤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래전 직장 동료들과 회식 후 영화관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눈과 귀가 피곤해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동네 도서관에서 DVD를 빌리거나 OTT로 집에서 편하게 본다. 물론 영화관에서 처럼 몰입되지 않고 작은 화면의 사이즈는 어쩔 수없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세상은 편해지고 있지만 우리들의 감성은 여전히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빨리빨리 돌아가고 정확하게 돌아가는 세상보다 느긋하게 돌아가고 가끔씩 잡음이 생기는 세상이 더 인간적인 맛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LP의 먼지를 털어서 턴테이블 위에 얹어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