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해하지 못한 영화
그전부터 미루어 왔던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나는 영화관에 가지 않고 주로 동네 도서관에서 DVD를 빌려보거나 케이블채널에서 OTT로 영화를 보는 편이다. 시간에 맞추어 영화관에 가는 것도 번거롭고 2시간가량 좁은 의자에 앉아있는 것도 고역이라 영화관에 거의 가지 않는다.
이번에 보게 된 영화는 '토리노의 말'.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그냥 오락영화가 아니라 무언가를 시사 암시하는 내용이 있을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흑백영화이다. 흑백 영화라면 무언가 깊은 사색을 요하거나 삶에 대한 깊은 통찰 이런 것 들을 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고, 한참을 생각해야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주제가 무엇인지, 감독이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알 수 없는 영화일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끝내 이 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없었다. 나는 성격상 영화를 보면 항상 이 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초점을 맞추는 편인데 그런 것들이 이해되지 않으면 마음이 무겁다. 그런 경우 나의 부족한 식견과 이해력을 탓하게 된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음악은 긴장감을 유발하고 무언가 불길한 앞날을 예고하는 분위기이다. 영화의 배경은 황량한 벌판 위에 있는 돌로 된 집과 마굿간. 이곳에서 살아가는 늙은 아버지와 나이가 들어 보임직한 딸. 늙은 아버지는 오른쪽 팔도 제대로 쓸 수없다. 그들이 왜서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둘 간의 대화도 별로 없다. 집 밖으로는 모래를 동반한 세찬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분다. 영화 내내 햇빛이 보인 날이 없고 항상 흐린 날이고 음울한 날씨이다. 항상 을씨년스런 기운이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흑백으로 된 작품 사진을 보는 느낌이 든다. 화면의 내용은 거의 변함이 없다. 정지화면이 아니고 동영상이지만 영화 내내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한정적이다. 황량한 벌판, 돌로 된 허름한 집, 마굿간, 아버지와 딸.
이 영화의 초반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어느 날 프리드리히 니체가 뛰는 말을 제어하지 못한 마부가 말을 폭행하자 니체가 그 말을 감싸고 울었다. 그리고 그는 집으로 와서 어머니에게 '나는 바보였다.'라고 이야기하고 이 후로 10년 동안 누워 지내다 죽었다"는 네레이션이 나온다. 니체의 그러한 삶이 어떻게 이 영화의 주제와 연결이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말이 하나 있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 가끔씩 이웃 친구가 와서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헷소리나 지껄이면서 술이나 달라고 한다. 어느 날 집시 무리들이 와서 집 앞에 있는 우물물을 마신 후에 우물이 말라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말도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다른 곳으로 이사하려 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정신을 집중해 보았는데 끝끝내 이 영화는 그런 나의 기대를 저버린다. 내가 알아서 이 영화를 이해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이해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려야 한다. 그럼에도 가끔 이런 영화가 좋다.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 그렇게 되면 나는 한참 이 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곱씹으며 생각해야 한다.
어느 영화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종말을 향해 가는 우리들의 피폐한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여기에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것은 내가 느낀 결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평론을 읽고 억지로 그런 감상을 느끼려고 한다는 것도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한 대로 두어야 한다.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을 억지로 이해한 것인 양 자기암시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를 보았으니 한동안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였지만 나는 이 영화를 오랫동안 생각할 것이다. 감독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각 장면에 나오는 그들의 말이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증을 계속 가지고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한동안 생각할 거리를 나에게 던져 주었다. 단순한 오락용으로 스쳐 지나가지 않고 계속 고민하고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쓸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