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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야~ 너 꽃차 배워보면 어때?"

21년 가을, 그날따라 유난히 내 심장은 콩닥콩닥거렸다. 

‘내 인생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설렘도 마구마구 솟았다. 온라인에서 인연이 된 언니들과의 첫  만남! 그것도 부부동반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내가 하는 일에 반기부터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모임에 따라가 준다고 하니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처음으로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어리게만 생각했던 딸들도 부모의 빈자리가 왠지 흥분되는 듯했다.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믿고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아이들 핑계로 멈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과의 첫 만남. 그런데 낯설지 않았다. 낯가림이 심했던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얼싸안고 토끼뜀을 뛰자 남편은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하늘 한 번 보고 내 얼굴처럼 붉어진 나무들도 한 번 보고 바스락거리는 낙엽들도 한 번 보고 바쁜 시선만큼 내 마음도 감사함을 연발하며 바빴다. ‘앞만 보며 살았구나.’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몽글거리는 마음들을 홀로 삼키고 내 앞을 옆을 함께 걸어주고 있는 이 감사한 인연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세상 구경 처음 나온 사람 마냥 연신 감탄을 하고 있을 즈음 보자기 공예를 하는 언니가 나를 불렀다.      


"마틸다야~ 너 꽃차 배워보면 어때?"

"제가요? 꽃차? 저는 차 잘 모르는데..."     


도전이 두려워 얼버무리는 나에게 언니가 곱디고운 꽃차 사진들을 보여주셨다.  

                                  

"한 번 생각해 봐~ 언니도 잠깐 배워봤는데 너하고 참 잘 어울릴 거 같어~" 

“네~”


메리골드꽃차



짧게 답한 뒤 조금 전까지도 나를 홀렸던 법주사의 가을이 아닌 전화기 속 꽃차만 한참을 보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무엇을 도전할 용기가 나질 않았었다. 즐거웠던 그곳에서의 1박 2일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느 전업주부의 삶과 다른 듯 비슷한 나의 하루. 온종일 종종걸음 치며 가족을 위해 뛰어다니는 나의 하루 속에 문득문득 꽃차가 생각났다.      

‘한 번 찾아볼까?’     







달팽이처럼 두리번거리며 느리게 세상 구경 좋아하는 나인데, 조금만 겁이 나도 껍질 속으로 숨어버리는 소심쟁이 아줌마인 나인데....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긴 것일까 다르게 살고 싶어졌다. 멋지고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 갑자기 쾌속 질주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꽃차 배울 곳을 폭풍 검색하다가 집에서 몇 분 거리에 차 문화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껍질 속으로 들어갔다. 코로나 이후 힘들어진 경제 상황들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꽉 물고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고 나를 토닥이며 다시 하루를 살아냈다. 하지만 눌렀던 감정들은 쌓이기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금방 다시 평온해졌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가족들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남편은 언제나 바쁘고 아이들도 조금 있으면 나를 떠날 것이라는 사실이 자꾸 불편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 새로운 세계를 만나보고 싶었다.     


형편이 꽤 좋았을 때도 배워보고 싶었던 것들을 누르며 살았는데 나한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 학원비는 아깝지 않은데 나한테는 과자 한 봉지도 사주지 않았던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진정한 부자로 살려무나. 그 방법을 찾아 너의 삶을 누리렴”

더 해빙에서 읽은 한 줄이 그날따라 가슴에 붙었다.      


며칠 뒤, 남편을 공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그날따라 신나게 자기 일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도 나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어졌다. 나는 그렇게 겨울이었지만 햇살 따뜻했던 토요일 오후 용기를 내어 차를 돌렸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찾아간 문화원에 고민 없이 등록한 뒤 꽃차를 통해 진정한 나를 만나고 있다.  

   

무료한 날을 보내던 나에게 던져준 지인의 한마디를 나는 허투루 듣지 않았고 실행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 그때 나는 용기를 내어 기회를 잡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내 삶을 사랑하며 살아갈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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