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라고 불리는 것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명확한 것 같다. 음악이라고 인지하든 하지 않든 수많은 음악이 우리의 귀를 스쳐 지나간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귀로 들리는 신호가 지속적으로 들리는 이상 꽤 많은 음악이 우리의 삶을 관통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켜켜이 쌓아온 우리의 하루하루가 모두들 같을 수는 없다. 어떤 행동을 해왔고, 어떤 것을 먹어왔고, 어떤 것을 보고 배워왔는 것 등에 따라 현재의 "누구"는 그것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 수많은 하루하루에 어떤 음악을 들어왔습니까에 대한 답변 역시 매우 다양하게 펼쳐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 방송에서 나오는 혹은 미디어에서 분위기에 맞게 나오는 음악, 음악가들이 만들어내는 음악, 영화나 뮤지컬에서 나오는 음악, 클래식, 라이브 음악, 음악감상 바, 제3세계 음악 등 원해서 듣던 원하지 않던 우리의 삶을 관통하거나 스쳐 지나간다.
우리의 신체기관의 일부인 귀는 생각보다 제어하기 어려운 기관이다. 보고 싶지 않으면, 눈을 감으면 되고, 냄새를 맡고 싶지 않으면, 숨을 참으면 되지만, 귀는 닫을 수도 없을뿐더러, 막는다고 하여도 의도하지 않는 이상, 큰소리를 완벽하게 듣지 않기란 쉽지 않다. (냄새는 쉽게 익숙해져서 처음에 느꼈던 냄새의 자극과 달라지게 되며, 피부가 느끼는 촉각은 다른 감각에 의해 인지가 느리다) 그러므로, 매우 중요하거나 긴급한 정보는 시각적 신호보다는 청각적 신호로 전달하게 된다. 그만큼 직관적이라는 이야기다.
음악과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서두에 늘어놓는 이유는 음악이란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고, 싫어한다고 한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청각적인 신호 즉 음으로 이루어져, 그것이 일정한 규칙 또는 조화 (때론 부조화할지라도) 청자에 귀에 전달되는 소리들의 집합인 음악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영향을 받고, 죽을 때까지 영향을 받으며, 우리의 인생에 알게 모르게 관여를 하고 있다.
누군가의 음악은 태어날 때부터, 전통적으로 계승되어 오던 것을 이어받아 운명처럼 들려질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음악은 유명한 음악가의 음악을 존경하고, 따라 하고 싶어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음악은 본인의 내면의 소리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받고 싶어서,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서 인기를 얻고 싶고, 성공을 하고 싶어, 누군가는 그런 마음을 이용해 음악을 만들어 판매하고 싶고, 누군가는 음악이 본인의 삶 그 자체일수도 있다.
정말로 다양한 이유로 음악은 만들어지며, 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이 다양한 음악가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음악은 혼자일 수도, 여럿이 같이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거미줄처럼 상호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며, 이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되면 무한에 가깝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음(音, 챕터 I-1에서 다룸) 이 어떤 조화를 이루어 음악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청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형태로의 집합이 음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가가 본인에게 들려주고 싶거나, 본인의 결과물로만 간직하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의도적인 부조화를 집어넣을 수도 있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다가서자면, 그 음악가라고 하는 것이 인류가 아닌, 자연현상, 지구, 생명체의 범위로 넓혀도 그것들이 들려주는 음(音) 들의 집합이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전제가 참이라고 한다면, 자연, 지구, 생명체가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의도,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반대로 수많은 음악들이 우리의 세상에 포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음악가들의 의도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할 것인가? 그것이 얼마나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든 간에 음악가와 청자는 각자의 의지대로, 각자가 쌓아온 인생의 뒷 배경 (2번째 문단의 "하루하루")에 따라 각자 느끼면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