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비세 도입

버블이라 도입될수 있었고, 버블이 꺼졌지만 유효한 소비세

by 우주사슴
소비세 필요성 대두 - 고도성장의 끝과 재정 기반의 재설계


1980년대 중반,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지만 그 내면에는 균열이 있었다. 전후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직접세 위주의 조세 체계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고령화, 복지 수요 증가, 그리고 경기 순환에 따른 세수의 불안정성이 겹치면서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을 위한 구조 개편이 요구되었다.


소비에 과세하는 간접세, 특히 소비세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대두되었다. 이는 단지 세목 하나의 신설이 아니라 국가 재정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그동안 일본의 조세는 ‘능력에 따라 부담하는’ 직접세 중심의 조세 정의 원칙에 기초해 있었지만, 이는 고도성장과 완전고용이 뒷받침되었을 때만 가능한 전제였다.


국가는 이제 ‘보편적 재정’을 구성하기 위해, 개인의 능력 대신 소비라는 행위를 과세 대상으로 삼는 실용주의적 전환을 선택하게 된다.


그 당시 버블의 절정 — 겉은 호황, 속은 불균형


당시 일본은 표면적으로 버블경제의 한가운데 있었다.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격은 급등했고, 일견 모든 것이 풍요로워 보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 혜택이 대기업, 금융기관, 자산 보유자 등 특정 집단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중산층 이하의 계층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세는 부유층보다 서민층에 더 큰 부담을 주는 역진적 과세로 인식되며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세금은 단지 국가의 재원을 마련하는 장치가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정의롭다고 여기는지를 반영하는 정치적 도구다.


소비세 도입은 바로 이 ‘정당성의 균열’에 직면했다. 겉으로는 번영했지만 그 아래에 숨은 분배의 불균형과 조세의 형평성 문제는 사회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경제적 호황기에도 민주주의적 조세 합의는 자동으로 확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버블이라서 가능했던 조건 — 조세 저항을 흡수한 과잉 유동성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세 도입이 가능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버블경제라는 유동성의 과잉 상태 덕분이었다. 개인과 기업의 체감 경기, 자산 효과, 금융 확대가 모두 긍정적 기대를 자극했고, 세금이라는 ‘비용’조차 상대적으로 가볍게 인식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버블은 소비세 도입에 대한 저항을 심리적 유예 상태로 만들었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단기 실행을 가능하게 했다. 감각의 호황이 이성의 판단을 눌렀고,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민의식은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소비세라는 구조 개편이 제기하는 질문 — 우리는 무엇에 과세하고, 누가 그것을 감당할 것인가 — 는 자산 인플레이션의 환호 속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다케시타 내각은 이 틈을 타 1989년 3% 소비세를 밀어붙였고, 이는 경제사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소비세 강경도입의 결과 - 자민당의 균열


그러나 이 결단은 자민당에게 치명적인 대가로 돌아왔다. 소비세 도입 직후 실시된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역사상 처음으로 참의원 과반을 상실하며 정권 기반이 흔들렸다. 여기에 리쿠르트 스캔들이 겹치며 정치 불신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후 몇 년 간 일본 정치는 다당제 혼란기와 비자민 연립정권 등장으로 이어진다.


(리쿠르트 스캔들 - 리크루트 홀딩스사가 자스닥 상장 직전 자회사 리크루트 코스모스의 미공개주식을 정계, 관계, 경제계, 언론계 유력 인사들에게 저렴하게 양도하여 큰 차익을 남기게 했다.)


이는 단지 소비세라는 조세정책의 여파가 아니라, 1955년 이후 지속된 일당지배체제의 피로, 기득권과 관료주의에 대한 불신, 국민과 정치 사이의 괴리 등 장기 누적된 정치구조의 한계가 표출된 계기였다.


결과적으로 소비세는 정당정치가 정책을 선도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정책이 정당체제를 무너뜨리는가라는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며, 정치와 조세의 상호 파괴성을 드러낸 분기점이 되었다.


버블 붕괴 이후의 역설 — 다행인지 불행인지


1989년 소비세가 도입된 바로 그 해, 일본의 버블경제는 정점을 찍고 붕괴 국면에 접어든다. 자산 가격 하락, 경기 침체, 금융 부실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소비세는 비교적 안정적인 세수원으로 기능하며 재정의 급락을 방지하는 완충재 역할을 한다. 버블의 산물이자 결과로 도입된 소비세가, 버블 붕괴 이후에는 그나마 일본의 재정 파탄을 막아준 최소한의 장치가 되었다는 점은 시대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 아이러니는 정책 판단의 정확성보다는, 제도가 가지는 인내의 구조, 즉 위기 이후에도 살아남는 규범의 생명력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정책은 실패해도, 제도는 살아남는다 — 이것이 소비세가 던지는 역설이다.


소비세 - 시대의 동시성 속 충돌과 유예


정책적 당위: 고령화와 복지 수요 증가에 따른 구조적 전환의 필요

사회적 분열: 호황의 외피 속에 분배 불균형과 계층 갈등

정치적 타이밍: 버블이라는 감각의 과잉이 조세저항을 잠재움

제도적 후폭풍: 자민당의 몰락과 정치 체제의 변화

역사적 아이러니: 결과적으로 위기 속의 안정 장치가 됨


소비세 도입은 단순히 경제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당대의 정치적 균열, 사회적 감각, 구조적 전환이 응축된 복합적인 사건이며, 한 국가의 조세정책이 어떻게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가를 보여주는 입체적인 사례다.

keyword
이전 11화1980년대 일본문화 황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