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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Apr 14. 2022

인간학습

애매모호함과 구체적 편견의 사이에서 마침내

 오늘의 단어는 '유레카'이다.


 드디어 코치, 그리고 엊그제의 나와의 소통에 성공했다. 이제 코치의 평가 기준이 내가 예상하는 평가 기준과 맞아가고 있다. 오늘 연습으로 만들어 낸 녹음 파일이 코치의 합격 목걸이를 받게 된 것이다. 자습의 목표가 뚜렷해지고 남은 시간 자습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헤매는 나를 위해 '목을 누르는 소리', '코를 막고 노래를 부르는 느낌', '애교 부리는(?) 느낌' 등으로 변주됐던 개념은 드디어 내 머리에 안착했다. 내가 목에 힘을 주고 로봇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비로소 나아졌다. 모기처럼 앵앵거리던 목소리는 한결 편안해졌다.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걷어차버려야 한다.
-<논리철학 논고>, 비트겐슈타인


 지난 수업 시간에 목을 높이 들고 노래 부를 때 피드백이 좋았던 것을 기억해 내어 따라 해 봤더니 내가 힘을 주던 근육에 힘을 주기가 어려워졌다. 그것이 오히려 나의 습관을 교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내가 어디에 힘을 주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니 소화제를 먹은 듯 속이 뻥 뚫렸다. 그 근육에 힘을 빼니 처음엔 어색해서 음정과 박자가 흔들렸지만 목소리에 힘이 빠져 듣기가 편해졌다. 노래를 할 때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오디오 데이터와 텍스트 데이터에서 인간이 의도한 기준을 마침내 학습한 기계처럼 나도 개념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습관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습관이 강화된 계기를 짐작해볼 수는 있다. 호흡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동요처럼 불러봐라'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 제안을 오해했던 것 같다. 불필요한 기교 때문에 호흡을 낭비하지 않는 목소리를 따라 하라는 것이 제안의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쩌렁쩌렁하고 쨍한 목소리를 억지로 흉내 내다보니 호흡은 지 않게 되었지만 긴장되는 근육이 추가되었다. 음정이 맞아야 한다는 강박, 호흡이 새면 안 된다는 강박은 근육에 추가로 긴장을 더했다. 그래도 호흡이 거나 음정이 틀리진 않았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결과 새로운 개념을 추가하기 위해, 나는 기존의 오개념을 다 무너뜨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마치 완공된 아파트에서 화장실을 한 뼘 더 넓히려면 관련 구역을 다 무너뜨려야 하는 것처럼. 새로 지으려면 걷어차 이미 없어진 사다리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혹시 모른다. 지금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도 착각일 수도 있다. 새로운 사실과 호환되지 않으면 지금의 개념도 다시 무너뜨려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아래층으로 내려가 새로운 구조의 사다리를 또다시 만들고 있을 미래의 내가 보인다.


 물론 더 아래층으로 내려가 사다리를 다시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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