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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Apr 22. 2022

돌+I 론(論)

평균으로 묘사된 '현실'이 나에게 족쇄가 될 때

또라이: [명사] 상식에서 벗어나는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 우리말샘. '또라이'. 22/04/21 15:54 접속.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 표시-동일 조건변경 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 국립국어원.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집단에 가도 또라이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며, 소속 집단에 또라이가 없다면, 내가 바로 또라이라는 것이 법칙의 요지이다. 한편, 중학교 때 만난 사회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에 어느 교과서에서도 읽어보지 못한 '지랄 발광 보존의 법칙'을 열심히 설명하셨다. 각자의 인생에 최소 한 번 이상은 지랄 발광하는 때가 있다는 법칙이었다. 나는 이제 이 두 법칙(?)에 기반한 가설을 이야기하고 싶다. 만인만년 또라이설이다. 모든(!) 사람은 항상(!) 또라이일 수밖에 없으며, 이 똘끼는 후대에도 전해진다는 가설이다.


가령 언론에서 ‘평균적인 한국인’이라는 표현을 쓸 때 그 평균은 신체 치수나 소득, 재산 같은 특성뿐 아니라 사고방식, 심리, 생활방식 등에서도 전형적인 존재를 일컫는다. 이를테면 가장 평범한 보통사람이 국가대표가 되는 셈인데, 현실적으로 모든 면에서 평균에 부합하는 한국인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즉 ‘평균적인 한국인’은 통계가 만들어낸 일종의 가상적인 모형이라 보면 되겠다.
-<‘평균적인 한국인’은 누구일까>, 조재근, 나라경제 2018년 09월호


 또라이는 상식을 규정하는 사회와 내가 모두 있어야 비로소 성립한다. 재밌는 것은 상식을 규정하는 사회는 계속 바뀌고, 그에 따라 상식이 형성되는 방식과 상식의 내용 자체가 자주 바뀐다는 점이다. 정신 차려보면, 어제의 또라이는 오늘의 상식이 되어 있고,  오늘의 또라이는 내일의 식상한 상식이 되어 있을 것이다. 굳이 시간 여행을 하지 않아도 경험할 수 있다. 국외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에서의 나는 현지에서의 또라이가 되어 현지인의 원치 않는 관심을 듬뿍 받아갔고, 유치원, 초/중/고/대학교, 군대, 각종 모임에서 비(非) 또라이와 또라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사실 멀리 나갈 필요도 없다. 지금, 바로, 여기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상식은 정도가 다를 뿐 모두 다르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의 나는 신성한 도서관에서 노트북으로 상스럽게 또라이 이야기나 끄적이고 있는 한심한 또라이일 수 있다. 다른 시공간에서 비 또라이 명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공간에서 또라이 짓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어떤 또라이가 주류가 되어 있을까. 그리고 바뀐 상식에 적응해 주류 또라이가 되려고 했던 나는 결국 어떤 또라이가 되고 싶은 것일까. 다급하게 내 안의 똘끼를 찾아본다.


후회할 거라고 자꾸 협박하는데 후회를 해도 내가 하는 거잖아. 이름대로 가는 수밖에. 이름을 이도라라고 지어놨으니까 또라이 돼야지, 뭐.
-<아몬드>, 손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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