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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유목민 Jul 18. 2022

티 내지 말라는 말

티 내는 것의 득과 실

독서모임 후의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다른 사람이 화장실에 가느라 돗자리에는 나와 그 사람 단 둘이 앉아 있었다.


"너의 말과 행동을 지켜봤는데 웬만하면 게이인 것 티 안 냈으면 좋겠어."

말과 행동을 다 보여줄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지레짐작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게이답게 말한다는 건 무엇이고, 게이답게 행동한다는 건 무엇인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조언과 언어폭력, 그 미묘한 경계를 능숙하게 오가며 그는 계속했다.

"내 지인 중에 너 같은 얘가 있었어. 트랜스젠더니 뭐니 하면서 난리 치고 싸우는 것 보니까.. 하아, 내가 너를 좀 더 어릴 때 만나도 고칠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을 '고친다'는 표현에는 그가 나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사람의 특성을 하자로 보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였다. '난리 치고 싸운다'는 표현은 티 낸다는 표현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화장실에 갔다 온 일행이 합류하자 그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얼굴도 반반한 게 애인이 없는 걸 보니.... 흐흐...."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은지 그는 나의 배려를 멍청한 소심함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지 돗자리 차지하고 앉았는데도 아무 말 안 하는 것 좀 봐."


결국 내가 돗자리를 강제로 뺏은 뒤에야 모임은 종료되었다.


집에 가는 길에 자칭 MBTI 전문가라는 그는 모임에 함께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성에 대한 품평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리에 함께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의 선입견은 이를 한 사람을 손바닥 위에서 올려다보며 통제하는 쾌감을 선사해 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불만으로 읽었다.


그는 나에게 세상엔 나에게 항상 우호적인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맞추어 나 자신을 '고치기'엔 나의 시간과 인생은 매우 소중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모두에게 인정받으려 나를 기꺼이 버렸던 과거의 나와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나를 발견하고 발견한 것을 티 내는 것만으로도 바쁜 백수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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