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 소리야?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렸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
우리는 모든 것이 본인에게 달렸다고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부, 명예, 건강, 성공.. 모두 내 노력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시대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온전히 나만 노력한다고 통제될 수 없다. 다른 수많은 요인들이 더해져야 한다. 즉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밖에 있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지배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충동, 욕망, 혐오감, 즉 우리의 정신적·감정적 삶이다.
어렸을 땐 철학이라 하면, '그게 뭐야' 또는 '그걸 어디다 써먹어'라고 생각했다. 전혀 쓸모없는 생각들이라고, 또는 말장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 10년여간 금융권에서 일하고, 정신건강 스타트업을 운영해 오고, 이제야 나의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살아가는 내게, 철학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수많은 철학자들 중에서도 나는 특히 니체와 에피쿠로스를 좋아한다. 많은 생각들이 나와 닮아 있기 때문인 걸까. 특히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굉장히 공감한다. 그는 최고의 삶은 '아타라시아(Ataraxia)'와 '아포니아(Aponia)'라고 불리는 두 가지 형태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타라시아'는 정신적 고통 없음, 즉 마음의 평온함을 의미하고, '아포니아'는 신체적 고통 없음을 의미한다.
그의 쾌락주의는 일상적인 즐거움이나 즉각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에피쿠로스는 무모한 쾌락 추구나 향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최소화하고 신체적, 정신적 안녕을 최대화하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적 활동을 포함한 중용과 절제를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하면 아포니아는 신체적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아타라시아는 마음의 평온함, 즉 걱정이나 불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에피쿠로스는 이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에피쿠로스는 균형 있는 삶과 자제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쾌락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물질적인 욕망을 가능한 한 줄이고, 대신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고, 지적인 추구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재밌지 않은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 점점 더 이런 생각의 가치를 나는 높이 산다. 그래서 철학이 이제야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삶에 대해 관철하는 듯한 생각들. 그리고 거기서 얻는 깨달음들. 이런 생각들을 할 때면 많은 통찰을 얻게 된다. 그럴 때 얻는 희열이란...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맨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논쟁하기를 즐겼던 걸까.
그러나 글 초반에 썼던 것과 같이, 전형적인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이런 에피쿠로스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철학자다. 그래서 더 재밌다. 저런 반대의 입장에도, 깨달음이 있고 거기서 어떤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는가가 달라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들이 생각하는 그것(?)에 추종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학파가 나눠지고 모여서 토론하는 내용들이 달라졌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그 시대를 살던 그들은 어떤 결핍이 있었기에, 저런 생각들을 해온 걸까.
인생에서 길을 잃는 수많은 순간마다 이 철학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에릭 와이너-
철학이 어렵고 따분한 학문이었는데,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책은 바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다. 여러분도 읽어보시길.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구성이니까 초보자도 쉽게 떠날 수 있다. 이렇게 쓰니 광고같지만 광고아니다. 내돈내산.
좋은 것은 나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