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를 멈춘 사람들에 대한 관찰
요즘 세상에는 인간의 운영체제가 제각기 다른 버전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업데이트 알림이 떠도 “나중에 하기”를 누른 채
수년째 재부팅 한 번 없이 버티는 모습이 곳곳에서 관찰된다.
어떤 이는 그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 말은 어쩌면,
“업데이트는 귀찮고, 저장은 알아서 될 거야.”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빠르게 바뀔 때,
누군가의 시스템에서는 미묘한 버그가 일어난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예전엔 이런 거 없어도 잘 살았는데.”라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그들의 삶에는 조용한 신념이 깔려 있는 듯하다.
‘지금 잘 돌아가는데, 굳이 바꿀 필요 있을까.’
다만 그 ‘지금’이 이미 오래전 버전이라는 사실은,
의식의 화면 속에서 종종 가려져 있다.
업데이트 로그는 대부분 비어 있다.
마지막 기록은 “2009년: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함.”
그 이후의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클라우드로 넘어가는 동안,
여전히 외장하드를 들고 다니며 “이게 더 안전하지.”라고 말하는 풍경도 볼 수 있다.
겉모습만 놓고 보면 최신형이다.
SNS 프로필은 5G 속도로 바뀌고,
사진 속 얼굴에는 늘 신형 필터가 적용되어 있다.
하지만 내부 운영체제는
아직 Windows XP 시절의 감정 구조를 사용 중인 경우가 있다.
새로운 감정을 처리하지 못해
‘비난’, ‘비교’, ‘부정’이라는 오래된 명령어들이 주로 실행된다.
겉으로는 베타 버전의 자유인처럼 보이지만,
내부 코드는 여전히 관습에 최적화된 순응 패턴을 품고 있다.
그들의 대화에는 이런 구문이 자주 등장한다.
“난 트렌드엔 빠르지만, 생각은 귀찮아.”
업데이트 항목을 찾아보면
‘팔로워 수 증가’만 눈에 띄고,
그 외의 변화는 미비하다.
이 유형은 관계에서 독특한 충돌음을 낸다.
서로 다른 OS를 쓰면서도
같은 언어로 대화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한쪽은 맥 OS처럼 감각적 직관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쪽은 윈도우 기반의 논리 명령어로 응답한다.
결과는 종종 이렇다.
“파일 형식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한쪽에서는 “감정이 중요하다는 말이야.”라며 감정의 확장을 시도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 감정을 어디에 저장해야 하지?”라며
프로그램 경로를 찾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대화의 파일은 깨지고,
감정의 데이터는 손상된다.
관계의 하드디스크는 조용히 파편화되고,
말은 끝내 자동 종료된다.
어디선가 “시스템 충돌이 감지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음이 울린다.
어떤 시스템은 고장 난 줄 알면서도 그대로 둔다.
“원래 이래요.”
“내가 좀 그런 사람이야.”
이런 말은 인간 버전의 에러 무시하기 버튼처럼 들린다.
감정의 오류가 누적되어도
재부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전원에 연결해
에너지를 빼앗듯 버티기도 한다.
자기 점검 모드를 실행하려 하면,
늘 비슷한 메시지가 뜬다.
“시스템이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문장은 차분하지만 묘하게 슬프다.
자신의 오류를 감지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결국, 느리게 멈춰 서는 쪽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버그를 품고 살아간다.
다만 차이는,
그 버그를 업데이트로 수정할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요즘은 스펙은 높지만
의지는 저전력 모드인 인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또는 디폴트 상태의
구형 버전을 자랑처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인간관계란,
서로 다른 버전의 시스템이
얼마나 오류 없이 공존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실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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