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방향이 교차하는 순간
(이솔 · 옵저버)
퇴근 후, 회사 빌딩 라운지.
낮의 소음이 가라앉은 자리엔 피로와 잔향이 섞여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제각기 피로를 쥔 채 앉아 있었다.
저녁 조명 아래, 모두가 조금 낯설게 빛났다.
시안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맥주는 미지근해졌고, 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종이컵 뚜껑을 톡톡 두드리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혹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듯 앉아 있었다.
(시안) – 이솔의 시선
그는 그녀가 들어오는 걸 알았다.
퇴근 후에도 단정한 모습, 여전히 집중한 눈빛.
태블릿 pc의 불빛이 잠시 그의 얼굴을 스쳤다.
‘업무 시간 끝났는데도 집중모드라니.’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그녀는 못 본 척했다.
멋쩍은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나, 무시당한 건가?’
무의식적으로 잔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딱, 딱. 소리가 작게 울렸다.
잔이 기울어져 맥주가 흘렀지만
그는 닦지 않았다.
그는 알았다.
그게 지저분해 보인다는 걸.
하지만 이상하게도 ‘쿨해 보일 수도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 앞에서 초라한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보면 마음이 이상하게 울렁거렸다.
좋아하는 건지,
지는 게 싫은 건지,
그조차 알 수 없었다.
(하윤) – 이솔의 시선
시안은 여전히 자기중심으로 돈다.
허세인지 습관인지 모를, 그 무심한 척하는 태도.
하지만 손끝의 불안한 움직임이
그의 진짜 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불쾌했을 것이다.
맥주를 흘리고 닦지 않는 사람,
대화 대신 휴대폰을 보는 사람.
하윤은 그런 타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스스로를 설득하듯 물컵을 들어 올렸다.
그것이 큰 착각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관대한 해석을 허락했다.
그녀는 자신을 납득시키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작업하던 파일을 열었다.
화면에는 ‘내일을 디자인하다’라는 파일명이 떠 있었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잡고 집중했다.
‘지금은 사업계획서 마무리에 집중하자.’
이성의 목소리가 감정을 눌렀다.
(이솔 · 옵저버)
나는 그 둘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둘 다 모르는 척했지만,
서로의 기척을 세포 단위로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의 화면을 볼 때마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맴돌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한 단어가 떠올랐다.
‘타이밍.’
관계도, 일도, 감정도 결국 타이밍 싸움이니까.
그녀는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이었고,
그는 ‘현재’를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둘 사이에서 마음의 수학식을 세우고 있었다.
그녀 – (자립 의지 + 냉정함) = 실존감
그 + (자존심 – 확신) = 공허
나 ÷ 둘 = 관찰의 피로
인생이 이렇게 복잡한 방정식일 줄은 몰랐다.
나는 음료잔을 들었다.
‘가능한 오래, 많은 것을 지켜보는 것도 괜찮겠지.’
희미한 미소가 흘렀다.
나도 한때, 누군가를 이런 식으로 바라봤던 적이 있었으니까.
라운지 문이 닫히며 조명이 한 톤 낮아졌다.
공기 속엔 미묘한 온기가 남았다.
하윤은 테블릿 pc를 뒤집어 놓았고,
시안은 조용히 잔을 비웠다.
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보며 생각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을까.’
문득 마음이 이상했다.
오래 바라보면, 결국 마음이 따라가 버린다.
어쩌면 이런 미묘한 감정의 교차를 지켜보는 일,
그것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
이렇게까지 해석해야 하는 내 마음은,
도대체 누구를 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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