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지 않아도 피어나는 순간들
예쁘게 꾸미지 않은 날이었다.
급히 묶은 머리, 조금 구겨진 옷,
얼굴엔 화장 대신, 아침 햇살이 살짝 물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나는 어제보다 덜 불편했다.
무언가를 가리지 않아도 괜찮았고,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했다.
우리는 종종,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진짜 아름다운 순간들은 대부분 ‘의도된 것’보다
‘자연스레 스며든 것’일 수 있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이 평온해 보일 때,
길가의 그림자가 예쁘게 떨어질 때,
누군가의 웃음이 나를 따라 번질 때—
그건 내가 준비한 장면이 아니라
세상이 잠시 내 쪽으로 기울어준 순간이었다.
아름다움은 그럴 때 나타난다.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사라질 때,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라는 여유가 들어설 때.
예전엔 매끄럽고 완벽한 장면에서만 아름다움을 찾았지만,
지금은 조금 엉성해도, 어딘가 따뜻한 장면이 더 오래 남는다.
그건 아마도 그 장면들이
꾸미지 않은 나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나는 작은 연습을 하고 있다.
무엇을 꾸밀지보다,
무엇을 발견할지를 생각하는 연습.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
비 오는 날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
길가에 핀 들꽃 한 송이,
늦은 오후 하늘의 노을빛—
그런 사소한 것들이 하루를 바꾸기도 한다.
그건 돈이 드는 일도, 누가 봐줘야만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냥, 지금 여기에서 내가 머무는 방식일 뿐이다.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는 날에도,
사실은 내 주변의 작은 것들이 나를 다정히 붙잡고 있다.
그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그게 요즘 내가 배우는 ‘아름다움 사용법’이다.
결국 아름다움은, ‘보여지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가는 감각’이었다.
이제는 이런 물음이 남는다.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걸까?
그 욕망의 시작은 어디서 왔을까?
‘아름답지 않음’은 정말 결핍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자유일까?
아마 그다음 이야기에서는,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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