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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Jun 07. 2022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늙어감에 대하여

  운전을 하는데 옆창문으로 눈발이 흩날리는 것 같았다. 앞유리창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옆으로 흰 무언가가 한두 송이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려나 생각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끝내 눈은 내리지 않았다. 무언가 ‘깜박’이랄까, ‘번쩍’이랄까, 운전할 때마다 창문 옆쪽으로 빛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검색해보았더니 비문증과 섬광증이라고 했다.

  안과에 갔더니 의사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이 눈으로 안경도 안 쓰고 운전하셨어요? 사고 안 난 게 천만다행이에요. 저 시력 교정 수술 했는데요, 라식이요. 그렇게 말하면서 생각해보니 이미 수십 년 전이었다. 어떤 수술도 완벽할 수는 없고, 나이가 들면 모든 신체의 기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술 전 시력으로 돌아와버린 거다. 

  수술 전 나는 지독한 근시였다. ‘시력검사표 맨 위의 ‘4’가 또렷하게 보일 때까지 앞으로 나오세요.’라고 하면 거의 1미터 앞까지 바짝 다가서야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 다시 그 시력이라니. 무엇보다 놀랐던 건 시력이 그렇게 나빠질 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시력에 안경도 안 쓰고 운전했다니, 수백 번 오가는 출퇴근길, 짧은 거리이긴 했지만 안 보인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기가 막혔다. 의사가 얘기했다. 그래도 워낙 고도근시라 노안은 상대적으로 덜 느껴지실 거에요. 그나마 다행이죠. 병원에 다녀와서, 시력이 떨어진 걸 한탄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위로랍시고 얘기했다. 수술하고 수십 년 써먹었으면 충분하잖아? 이제 좀 안 보여도 되잖아? 그래 그건 그렇지. 하지만 수십 년이 너무 빨리 지나갔는 걸. 내겐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안경을 맞췄다. 새로 맞춘 안경을 쓰니 너무 잘 보여서 어지러웠다. 나는 그동안 내게 경미한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눈이 나쁜 것뿐이었다. 안경을 쓰니 상대방의 얼굴을 하나하나 다 구별할 수 있었다.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코트를 입었더니 팔꿈치와 밑단에 자잘하게 일어난 보풀들이 눈에 띄었다. 부츠를 신었더니 부츠의 앞코가 헐고 복숭아뼈 근처가 낡아서 벗겨진 게 보였다. 생각해보니 이미 10년도 더 된 물건들이었다. 안경을 쓴 채 다른 신발들을 꺼내 보니 뒷굽이 닳고 가죽이 벗겨지고 얼룩이 져 있었다. 눈에서 발까지가 너무 멀어서 그동안은 몰랐다. 보이지 않으니 내가 말끔한 줄 알았다. 낡고 더러워진 신발, 올 풀린 바지 밑단을 신고 입고 다녔다니, 나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신발 여러 켤레와 코트, 바지 등등을 다 갖다 버렸다. 몰랐다. 그렇게 낡아가는 동안에도. 내가 이렇게 늙어가는 동안에도.

  예전에 ‘노인을 위한 에티켓’ 비슷한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냄새가 나거나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무조건 이틀에 한 번은 전신을 씻을 것. 나이가 들면 감각이 둔해져서 냄새나고 지저분한 게 묻어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의 감각에 의지하지 말고 무조건 이틀에 한 번은 목욕을 할 것. 옷도 더러워지면 빨아야지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날짜를 정해 세탁할 것. 그렇다. 감각에 의존할 수 없는 시간이 오고 있다. 내 감각을 믿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안경을 쓰고 집안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모서리에 먼지가 뭉쳐 있는 게 보였다. 밀대로 대충대충 밀어대는 바람에 구석까지 밀려온 손톱 부스러기, 쌀알, 실밥 따위도 보였다. 창피했다. 내가, 우리집이 이렇게 더러운지 몰랐다. 내게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었다.

  안경을 다시 쓰기 시작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자주 한숨을 쉬며 안경을 벗는다. 콧대가 아프고 귀가 아프고,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아 신경질이 나기도 한다. 시력은 급속히 떨어져서 이제 가스 중간 밸브가 잘 잠겼는지, TV 자막은 뭐라고 써 있는 건지, 몇 번 버스가 오고 있는지, 안경 없이는 확인할 수 없다. 뿌연 물속에, 옅은 안개 속에 사는 기분이다. 날이 갈수록 시력이 나빠지니 안경을 쓰고도 점차 보이지 않고, 멀리용 안경, 가까이용 안경, 번갈아 가며 쓰는 것도 지친다. 멀리용 안경을 쓰면 가까운 게 안 보이고, 아주 가까운 건 맨눈으로 잘 보이지만 모니터는 또 가까이용 안경을 써야만 보인다. 아 번거로워, 번거로워서 울적해진다.

  무얼 하나 보려고 해도 이 안경 저 안경 번갈아 가며 쓰고 벗어야 하고, 외출을 하려면 이 안경 저 안경 다 챙겨야 하고, 그러다 보니 뭘 해도 굼뜨게 되고, 자꾸 굼뜨다 보니 그만 귀찮아져서 기피하게 된다. 그리고 절감한다. 늙어가고 있구나. 늙어가는 건 느려질 수밖에 없는 거구나. 천천히 이것저것 준비하고 대비하고 그러고도 당황하는 순간이 많아지는 거구나.

  이 글에 결론은 없다. 나는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는 것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 아직도 당황스럽고 날마다 실망할 뿐이다. 익숙해지지 않는 퇴화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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