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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Jun 14. 2022

술 취한 노숙자가 나를 이모라고 불렀다

늙어감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도 나는 예쁘장한 편은 아니었다. 예쁜 아이라는 말도, 예쁜 학생이라는 말도, 예쁜 아가씨, 예쁜 아줌마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아이였고 여학생이었고 아가씨였기 때문에 추근거림을 당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잊히지 않을 만큼의 빈도였다. ‘여자’라는 것에 ‘혼자’가 더해지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뚜렷하게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위의 걱정과 잔소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과 쉽게 내뱉는 비난과 단정의 말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나는 움츠러들었다. 점차 늦은 시간, 인적이 드문 곳, 혼자 있는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별일 없이 지금까지 왔다. 순전히 다행으로.

  그러다 지난 겨울, 지하철 막차를 타게 되었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지하철역. 이미 버스는 다 끊겼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길가에 서 있다가 하나둘씩 택시를 잡아타고 떠났다. 목적지가 애매해서 택시를 잡기 힘들거나 누군가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는 예닐곱만 남았다. 상가의 건물들도 모두 불이 꺼지고, 가로등조차 희미하고,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내 옆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채근하는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금발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그때 술 취한 노숙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백발이 반쯤 섞인 떡진 머리에 무릎이 나온 두꺼운 솜바지, 그리고 냄새. 노숙자가 틀림없었다. 그는 내 앞 여자에게 비틀비틀 다가가더니 허공에 손짓을 하며 불렀다. 어이, 아가씨, 아가씨, 어이 아가씨. 다른 말은 없었다. 혀가 꼬인 채 ‘아가씨’와 ‘어이’만 반복했다. 그래도 한밤중 술 취한 남자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젊은 여자는 뒷걸음질쳤고 내 등 뒤로, 그리고 다른 남자 등 뒤로 자리를 옮겼다. 노숙자는 다시 팔을 허우적거리며 웅얼거렸다. 아가씨, 어이 아가씨. 잠시 후 젊은 여자는 사라졌고 노숙자가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내 쪽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도 흩어지고 주위에는 두세 명만 남아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디로 가지, 뭐라고 하지. 저 노숙자를 어떻게 하면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서 있는데 노숙자가 내게 손짓했다. 어이, 이모, 어이, 어이, 이모. 나는 순간 멍해졌다. 이모라는 호칭은 처음이었다. 노숙자는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계속 불러댔다. 내 쪽으로 손을 흔들며, 하지만 술에 취해서 정확하게 가리키지는 못하고 그저 흐느적거리며, 이모, 이모, 어이 이모.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다른 여자가 내 뒤에 서 있나. 아니, 없었다. 여자는 나뿐이었고 노숙자는 다시 웅얼거렸다. 이모, 이모. 그러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저쪽으로 걸어가 벤치에 누웠다. 

  그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모, 여기 막걸리 한 병만 줘요, 소주 한 병만 사줘요, 그런 것이었을라나. 주모처럼 술을 가져다주는 이모. 그 노숙자는 백발에 가까운 머리나 주름살로 볼 때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였다. 그런데 이모라니, 나보다 어리거나 동녀배도 아닌 할아버지에 가까운 이에게, 그것도 술 취한 이에게 이모라는 말을 듣다니. 내 옆의 젊은 여자에게는 아가씨라고 했다. 그런데 내게는 이모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원하는 건 분명히 돈이나 술이나 그런 호의였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특히 남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여자라서, 여자니까, 여자로서, 여자인데도, 여자이지만, 여자치고는, 그런 말들 사이에 내가 위치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그냥 이모가 되어버린 거다. 아줌마나 할머니처럼, 성적인 긴장이나 조심스러움 없이 그냥 쉽게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비슷한 존재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어쨌든 개별 특성을 인식할 필요 없이 그러려니 편안하게 여길 수 있는 존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 밤에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내가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주 조금이나마 덜 위험해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마음에 남았다. 나는 늙어가고 있고 늙은 사람은 약하고 순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경계심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조심스럽지도 않다. 나 역시 젊은 남자보다 나이 든 남자를 덜 경계한다.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차이 자체가 희미해지고 그냥 사람일 뿐이다. 친절을 베풀어도 오해할 여지 혹은 필요가 없는 것. 말 그대로 무성적 존재가 주는 무심함.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는 변화를 깨닫지 못했다. 내가 이제 이모라 불린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마음을 편하게 해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내게서 어떤 부분이 사라짐으로써 얻는 평온. 다만 그 상태로 비어 있을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얇은 평화. 내가 다시 무언가를 욕망하거나 주장한다면 주책맞다거나 징그럽다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나이 든 남자에게서 그런 면을 발견할 때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처럼. 늙어간다는 건 무성적 존재, 희미가 존재가 되기를 은연중에, 당연한 듯 요청받는 것.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래야 하는 암묵적 협의 같은 것. 그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편안하지만 혹여 그 밖으로 나갔을 때의 또다른 비난이 조금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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