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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Jun 21. 2022

신념을 지킨다는 것: 최선생님

마음에 남은 - 사람들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는 당연하게 반말을 하고, 간혹 때리기도 하고, 어르고 윽박지르는 것도 드물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때 최선생님은 유일하게 수업 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교실에 다 같이 앉아 있든, 혼자 교무실에 찾아가든, 한결같이 학생에게 존댓말을 썼다. ‘금오신화’를 가르칠 때는 시험에 나오는 부분이나 문제집에 발췌된 지문만 가르쳐도 됐을 텐데 굳이 다섯 편의 작품을, 그것도 전문을 다 인쇄하여 나눠주고 설명을 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졸면 화를 내는 대신 힘들면 잠깐 엎드려도 된다고 했고, 목이 마르면 뭔가를 마시거나 잠시 일어섰다 앉거나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한번은 수업 시간 중에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지 ‘그 공기가 부족한 그 상태, 그 상태를 뭐라고 하죠, 그 공기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짚을 때 앞줄에 앉아 있던 내가 ‘희박하다’라고 중얼거렸고, 최선생님은 나를 향해 조그맣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최선생님에 대한 나의 느낌은 꽉 막힌 사람 혹은 너무 점잖아서 오히려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이었고, 다른 아이들의 반응은 재미없고 살짝 만만한 사람 정도였던 것 같다. 


  성경 과목이 정식 과목으로 편성되어 있고 매주 예배를 드리는 미션 스쿨에 전교조가 생기면서 격랑의 시간이 이어졌다. 선생님들은 양편으로 나뉘어 헐뜯거나 빈정대거나 우리가 핍박받고 있다, 너희라도 힘이 되어 달라 하소연했고 학생들도 그 갈등과 불화의 한복판에서 이쪽 저쪽 상황 파악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사립 학교이니만큼 전교조 선생님들을 다 해고할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학생들은 그에 반대하는 서명판을 돌리고, 미션 스쿨답게 점심 시간에 자발적으로 모여 선생님들의 화합과 사랑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선생님들을 크게 두 편으로 나누어 가운데를 깔끔하게 가를 수 있었던 시기였다. 선생님들의 친분 관계와 주장과 생각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다만, 유일하게, 최선생님은 알 수 없었다. 그 가운데도 아니고 옆도 아니고, 어디에도 최선생님을 배치할 수 없었다. 별다른 언급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가득한 프린트를 나눠주고 나직한 목소리로 수업을 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좀 비겁하다고 생각했고, 역시나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최선생님은 교지반 지도교사였다. 그리고 반전은 졸업식 때 나눠줘야할 교지가 발간되지 않으면서 드러났다. 학교 전체를 휘몰아치던 갈등의 한복판에서도 수업 시간을 꽉 채워 오직 수업만 하던 최선생님이 전교조 관련 특별기사를 교지에 실으려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교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최선생님을 불러서 기사를 빼라고 했지만 최선생님은 학생들이 쓴 기사를 뺄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고 버텼다고 했다. 그리고 그해 봄, 선생님은 학교를 떠났다. 학원으로 갔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과연 학원에서 잘 버티실 수 있을까, 그건 더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문득문득 최선생님 생각을 한다. 신념을 지킨다는 것, 내가 할 수 있을 한다는 것, 용기를 낸다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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