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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Jul 28. 2022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영원히 머물게 될지도 모를

마음에 남은 - 장소들

  휴가와 여행은 다르다. 휴가는 기껏해야 일주일, 숙소와 둘러볼 곳과 먹을 것 등이 얼추 정해져있고, 돌아갈 장소와 시간이 분명하고, 돌아올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일이 있다. 반면 여행은 큰 얼개만, 그것도 언제든 변경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얼기설기 세워져 있고, 내일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고, 어쩌면 무탈하게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도 문득 문득 엄습한다. 뜻밖의 시간에 뜻밖의 장소에 가게 될 수도,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 하염없이 머무르게 될 수도 있다. 휴가로 시작되어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여행을 꿈꾸었으나 더럭 겁이 나서 휴가로 선회할 수도 있다. 진정한 여행이란 어쩌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동, 끝날 때가 되기 전에는 끝낼 수 없는 여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현실의 나에게는 그저 꿈인, 그것도 조금은 마주하기 두려운 꿈.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그 환상적이고 조금은 두려운 꿈속의 도시 같았다. 뜨겁고 건조한 공기에 콧속까지 말라붙는 느낌이 들었고 햇살이 살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여행사 건물 앞에는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서 있었다. 목이 늘어진 티셔츠에 반바지, 홑겹 원피스를 입고 먼지 묻은 샌들이나 낡은 슬리퍼를 끌고 얼굴과 목덜미는 벌겋게 익어 있었다. 여행의 설렘이나 들뜸은 보이지 않았고 다들 나른하고 조금은 지친 것처럼 보였다. 건물들이 모두 단층이라 그늘이라고 해봤자 몸통의 반도 밀어넣기 힘들었다. 타버릴 것 같은 햇볕에 몸을 움츠리고 간신히 카페를 찾아들어가 얼음 띄운 커피를 마셨다. 한낮 태양의 기세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다시 거리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컴컴한 카페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밖은 대낮, 이렇게 사막의 태양이 내리쬐는 시간이 계속될 것처럼 느껴졌다. 영원한 낮의 도시. 밤이 오지 않아 끝나지 않는 하루, 햇볕 때문에 숙소에도 집에도 못 돌아가는 여행지.    

  지루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해가 지고 거리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다들 어느 건물, 어떤 그늘에들 있었던 걸까. 붉은 진흙과 선인장 껍질로 지어진 성당 앞 광장에 앉거나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저기가 시장이었던 걸까. 촉수 낮은 줄전등이 켜지고 손으로 만든 작은 인형, 열쇠고리, 알록달록한 지갑 같은 기념품들을 늘어놓은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물방울이 맺혔다 흘러내리는 콜라병과 맥주병을 손에 든 채 도로턱에 앉아 있거나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오늘도 내일도 아무 할 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특별히 언성을 높이거나 크게 웃거나 신나게 떠들어대는 사람도 없이 그저 수군거리고 웅성거리는 정도의 소음들 속에 대부분 가만히 있다가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가만히 있고를 반복했다. 

     

  이곳은 이상한 곳이로구나. 대부분의 관광지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의 중간에 위치해 잠시 머무는 점과 같은 곳이었다면 이곳은 점점 반경이 넓어져 어느새 하나의 장소, 그냥 그대로의 장소가 되어버리는 곳 같았다. 어디서 왔는지도 잊어버리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잊어버리는, 그냥 여기 내가 있다는 것만, 아니 그것조차도 간간히 잊어버려도 되는 장소.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도, 어리둥절하게 두리번거리는 사람도 없이 모두 익숙한 듯 머무는 장소. 혹시 이곳이 호텔 캘리포니아에 나오는 그런 장소인가. 출구 없는 도시. 출구를 아무도 찾지 않는 도시. 낮에는 타는 듯한 태양볕에, 밤에는 가만히 고여 있는 미지근한 공기에 갇혀 영원히 머물게 되는 곳.     


  아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곳은 우유니 사막 투어 전후에 끼워 넣는, 하루나 이틀, 기껏해야 사흘 정도의 여정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그러했듯이. 하루는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투어 예약을 하고 오후에 달의 계곡 투어를 다녀오고, 다음날 새벽에 간헐천 투어를 다녀오는 모두가 똑같은 코스. 

  아타카마 사막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숨이 턱턱 막히는 고온과 건조한 공기에 할 말을 잃고 반쯤 넋을 잃을 채 앞사람을 따라가게 된다. 한참을 걷고 또 걷고, 사진을 찍고, 다시 걸어서 달의 계곡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다르면, 몸도 머리도 몽롱해져서 눈앞에 펼쳐진 사막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게 된다. 그림 같구나, 너무 그림 같아서 입체감이 없어, 멍하니 바라보며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드디어 노을이 내려 달의 계곡이 붉게 물들면 내 머릿속도 노을물이 든 듯 가라앉아서 그저 하늘과 바위를, 모래언덕을, 오랜 세월 저렇게 있었을 땅을, 다시 하늘을, 초점 없는 눈으로 한참 바라보다 밤이 되어서야 마을로 돌아온다.


  다음날 새벽, 어둠 속을 달려 한참 만에 도착한 간헐천.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가이드는 연신 조심하라고, 돌로 표시된 안전구역 안으로만 다녀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잔뜩 겁먹은 채 간헐천이 풀썩풀썩 무거운 진흙탕을 밀어올리며 끓는 광경을 보고, 증기와 함께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것에 깜짝 놀라고, 드디어 해가 떠오르면 비로소 위험에서 벗어난 듯 긴장이 풀린다. 아침식사로 바스러지는 마른 빵에 뜨거운 홍차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면 낯선 풍경에 반쯤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마시고 씹는 것조차 실감이 나지 않는다. 뜨끈한 야외온천에서 수영을 하거나 수영하는 사람을 구경한 후 아래로 내려와 바늘처럼 날카로운 풀덤불을 살짝 쓰다듬어보고 바위에 잔뜩 붙어 있는 이끼를 관찰하고 냄새를 맡고 멀리 풀을 뜯는 라마 떼를 구경하다 드디어 마을로 돌아와 버스에서 내린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특유의 분위기는 익숙지 않는 고산지대에 머리가 아프고 몸이 나른해져서일지도 모른다. 고온과 건조한 공기 때문에 기운이 빠지고 지쳐서일 수도 있다. 신나서 떠들어대고 웃어대기에는 달의 계곡에, 저 높은 산 위 간헐천에 체력과 기력을 다 놓고 와서 남은 게 없는 거다. 영원히 떠나지 못하는 도시 같은 건 나의 불안과 기대의 혼합물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모든 것이 반대였다. 지구 반대편, 반대의 시간, 반대의 장소, 반대의 계절. 일하는 나와 반대, 돈 벌어야 하는 나와 반대, 반복되는 일상과 반대, 익숙한 침대와 반대, 익숙한 밥상과 반대, 반대의 풍경, 반대의 삶. 그래서 영원히 떠나지 못하고, 그래서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으로 기억하는 지도 모른다. 언젠가 여기를 벗어나 다시 그곳으로 갈 거야. 그곳은 이곳의 반대이니까 이곳이 견딜 수 없어지면, 이곳에서 죽을 것 같으면 그곳으로 가야지. 그곳은 반대니까 살 수 있고 견딜 수 있어. 그렇게, 아주 단순하고 단순하게, 꿈속의 공간처럼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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