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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민 Oct 08. 2022

살아있는 액자

책방 베스트 스팟

 이곳저곳 다니느라 정신없었다. 비용을 아끼려고 책방 이곳저곳에 필요한 포스터 및 안내판 등 사소한 것은 직접 디자인했다. 그 일을 하다말고 한가득 쌓여있는 책 정리를 했다. 어제 정리한 책을 오늘 다시 옮겼야 했다. 새로 기부된 책을 꽂으려면 원래 있던 책이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다. 책 정리는 끝이 없다. 한 번도 장사해본 적이 없으니 주변 조언을 들어도 그때뿐이다. 필요한 것도, 있어야 할 것도 재빨리 알아채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해야 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다. 책방 시작도 하기 전에 뻗을 판이었다. 바닥이 늪같다. 축축한 덩어리가 온 몸을 잡아당겼다. 지쳐서 그대로 책방 소파에 드러누웠다. 바닥엔 조립해야 할 책꽂이와 노끈으로 꽁꽁 묶은 책더미가 한가득이었다.  


책방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 창문 시트지 벗기기


 크게 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은 그대로 ‘살아있는 그림’을 펼쳐주었다. 바람이 불면 쓰러지는 풀잎과 키 낮은 들꽃이 서로 자리를 내어주며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나지막하게 얼기설기 둘러선 남천 울타리도 묘하게 편안했다. 그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빛은 고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색상이 바뀌고, 아침저녁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에 하나뿐인 액자!  유리창은 원래 불투명 시트로 가려져 있었다. 책방 준비를 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시트지를 벗겨낸 일이다. 워낙 오랜 시간 동안 붙어있었고, 시트지가 두껍기도 해서 떼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물을 잔뜩 뿌려도, 빳빳한 주걱으로 밀어내어도 소용없었다. 하는 수 없이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조금씩 뜯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손가락 끝이 아린다. 

  

시트지가 사라진 맑은 풍경


 조금씩 시트지는 사라지고, 초록색이 나타나며 덮고 있던 시간의 무게가 벗겨졌다. 운 좋게도 조금 지나니 두꺼운 시트지가 축 늘어지며 일순간에 바깥 풍경이 드러났다.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묵었던 것을 벗어내고 마알간 모습을 보여주는 초록빛 액자!  잠시 들린 건물주도 짐짓 놀라는 눈치로 이런 근사한 모습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인테리어 공사하는 아저씨도 안에 있으면 답답할 건데, 큰 창이 트여있으니 시원하다며 잘한 일이라고 거들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손끝 하나 까딱하기 어려웠는데, 오월의 초록은 언어로 담을 수 없이 신비했다. 한껏 물을 머금은 나무와 풀은 '생명'의 전령사 같았다. 그동안 이토록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 풍경은 벽 하나를 나이에 두고 만난 연인처럼, 나에게 어서 만나고 싶다며 손짓했다. 맑은 초록빛이 주는 편안함 덕분일까? 머릿속으로 맑은 산소가 훅 들어왔다. 어깨를 짓누르던 헤라클레스급 피로도 일순간에 사라졌다.    


저녁 시간은 또 그 나름 편안한 자리

 

 지금은 책방 ‘베스트 스팟’이 된 ‘살아있는 액자’, 책방을 찾는 분들과 나누고 싶다. 소파에 푹 기대어 있으면 그날 내가 드러누워 보았던 풍경이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사실 책방에 잠시 머무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자리이기도 하다. 가끔 타지에서 여행 온 길에 "이 자리에 너무 앉아보고 싶었다!"며 앉는다. 마치 나의 집처럼 쿠션을 껴안고 편안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내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그래요. 잠시라도 쉬고 가세요. 우리는 잘살고 있다고, 애쓰는 것 알아요." 그 날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마음으로 전한다. 넉넉하게 안아주는 풍경 곁에는 바흐 무반주 첼로 2번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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