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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셋넷 Aug 29. 2022

배려와 희생 구별하기

착한 사람들이 정신과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정작 정신과에 와야 할 사람은 오지 않고 그들에게 상처받은 사람만이 정신과를 찾는다.


정신과 의사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실제로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기적인 성향보다 이타적인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다. 타인을 배려하고 믿고 양보했으나 상대방은 그러지 않아 마음의 상처를, 실제적 손해를 입곤 한다. 이들 중 몇몇은 그 정도가 심해 학대나 착취 수준의 관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어쩌다 정신과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면, 그들을 '선하게 살다 억울하게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명명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친화성이라는 성격 특성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격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친화성(agreeableness)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친화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협조적이고 이타적이며 사람을 잘 믿는다. 공감능력이 뛰어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기도 한다. 자연스레 타인을 더 많이 돕고 많은 것을 양보한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쉽게 화를 내지 않고 상대방이 사과하면 쉽게 용서하는 성향을 지녔다. 


누구나 이런 사람들이 내 친구이기를, 가족이기를, 혹은 직장동료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친화적인 사람은 어느 조직을 가도 환영받는다. 적당한 수준의 친화성은 개인의 행복과 사회생활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인이 된다. 



친화적인 사람의 두 가지 선택지 - 배려와 희생   

사람은 자신의 성격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성격은 비교적 완고하게 코딩된 프로그램과 같아서 각자의 성격에 맞는 한정된 결과값을 가질 뿐이다. 예컨대 친화성이 높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남들을 해하고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을 하기 어렵다. 어떤 자극이 입력되던 이들이 도출할 수 있는 결과값은 대게 배려와 희생 둘 중 하나가 된다. 


그러나 유사해 보이는 두 가지 키워드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친화적인 사람 앞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배려를 선택한다면 개인적으로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희생을 선택한다면 앞서 말한 사람들처럼 상처받은 마음을 이끌고 정신과를 찾을 것이다. '선하게 살다 억울하게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하게 되는 것이다. 



관계의 세 가지 목적

배려와 희생을 정확히 구별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의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는데 이는 구체목표, 관계 자체, 자기존중감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구체목표란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실제적인 이득을 의미한다. 조별과제를 예로 들면, 내 시간과 노력을 최대한 적게 소비하는 동시에 좋은 학점을 받는 것이 구체목표에 해당한다. 관계 자체는 이 관계에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느끼기 바라는지 고려하는 것이다. 조별 과제 중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과제가 끝난 이후에도 조원들과 좋은 친구로 남고 싶다면 관계 자체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존중감도 관계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 과제를 하면서 무시당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고 내가 한 일에 대한 합당한 존중을 받기 원한다면 자기 존중감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배려와 희생의 차이

배려와 희생은 관계에서 구체목표를 덜 추구하고 양보함으로써 관계 자체를 증진시킨다는 점에서만 동일하다. 배려는 단기적으로 이득을 포기했지만 관계의 증진으로 인한 장기적 이득을 바라본다. 이번 조별과제에서 내가 발 벗고 나섰다면 다음번 과제에서는 해당 과제에 어울리는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더 큰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희생은 단기적 이득뿐 아니라 장기적 이득 역시 포기한다. 예컨대 반복되는 조별과제에서 계속 자신만 힘든 역할을 수행한다. 


자기존중감 영역에서는 더 극적인 차이를 보인다. 배려하는 사람은 자신이 양보한 것에 대한 마땅한 존중과 인정을 요구한다. 과제물에서 자신의 이름을 가장 위에 올리는 것일 수도 있고, 잘했다는 칭찬 한마디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희생하는 사람은 자기존중감마저 포기한다. 내가 많은 일을 담당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다른 조원이 자신을 비난하는 적반하장의 상황에서도 반발하지 않는다.



희생의 방어기제, 도덕화와 부인에서 벗어나기 

남들에 비해 유난히 머릿속에서 배려와 희생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사람들,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자신이 희생하는 상황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희생하지 않겠다고 억지로 다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며, 특히 무의식적 방어기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어떠한 연유로 배려가 아닌 희생하는 상황에 빠지고, 때로는 자신이 그런 상황을 초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먼저 '도덕화'의 방어기제에 익숙한 경우가 많다. 도덕화는 현실적인 이익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남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확신을 가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들은 진료실에 와서도 자신이 희생하는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묻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도덕화의 방어기제는 정당한 분노조차 표현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관계에서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분노로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도덕화가 극심한 경우에는 자신이 아주 일부의 잘못만 있더라도 분노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다. 자신이 이러한 성향이 있다면 도덕화로 점철되는 인간관계는 반드시 자기패배적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 누구도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완전히 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인 역시 자주 사용되는 방어기제이다. 일방적인 희생-착취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희생하고 착취당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현실을 외면하는 게 자신의 자존감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런 성향이 있다면 차라리 심리적 관점이 아닌 경제적 관점을 취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가장 경제적인 것이 가장 심리적이다. 선의, 마음, 이런 것들은 옆으로 치워놓고 결국 내가 얼마를 손해보았고 상대방이 얼마의 이득을 보았는지 비교해보면 진실이 드러난다. 




상담 중에 배려와 희생의 차이를 이제야 알 것 같다며, 그 사이에는 억울함이라는 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희생은 고귀한 단어가 아닌 일방적인 단어이다. 우리가 추앙해마지 않는 부모 자식 관계에서조차 일방적인 희생은 나와 상대방을 파멸로 이끈다. 어쩌면 희생하는 사람은, 나는 희생을 감내할 수 있다는 과신에 빠져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되는 희생은 그 끝에서 억울함을 불러올 것이며 관계를 파괴할 것이다. 이 글을 주의 깊게 읽었다면 어차피 당신은 누군가를 착취할 사람은 아니다. 단지 나를 위한다면, 또한 상대방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희생이 아닌 배려의 길로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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