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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욱 Nov 12. 2024

스마트폰은 학생인권이 아니다.

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일기

"핸드폰 다 꺼."

  알코올, 대마, 모르핀. 마약류를 나열한 것 같지만 아니다. 코로나 시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던 100년 전 감기약 성분표다. 올해 1월 방송한 '벌거벗은 세계사'프로그램은 생활용품에 들어간 방사성 물질을 다뤘다. 화장품, 치약, 생수 등에 새로운 물질을 넣어 판매한다고 자랑하듯 광고를 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80년 전에는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담배도, 납성분이 들어간 화장품도 처음에는 다 괜찮다는 듯 입소문을 탔고, 광고를 해댔으며, 규제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마나 모르핀은 정부의 관리대상이다. 알코올과 담배는 일정 나이가 지나야 체험할 수 있다. 생활용품에 들어가던 납이나 방사성 물질은 아예 퇴출 대상이다. 그래서 우린 정말 안전하다 말할 수 있을까? 100년 전 사람들이 알콜과 대마가 들어간 감기약을 아무것도 모른체 아이에게 먹이는 그런 실수를, 지금 우리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자신할 수 있을까? 2009년부터 초등학교에 근무한 16년차 초등교사로서, 나는 스마트폰이 그런 위험물건(?)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스마트폰의 소지와 사용을 허가해도 괜찮은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학교 현장에서 크게 4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소지 불가, 사용 불가. 소지 가능, 사용 불가(학교 나가서 사용 가능). 소지 가능 사용 가능(단, 종례 후에), 소지 가능 사용 가능(수업 시간만 아니면 허용). 나의 대답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스마트폰 소지 불가' 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정상적인 뇌발달에 악영향을 준다. 서울성모병원에서 근무하는 김대진 가톨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한겨레신문과 나눈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쓰면 뇌에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청소년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의 뇌 연결성 변화를 연구했는데.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청소년이 충동 조절과 억제, 주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1분 미만의 짧은 영상들이 화면을 점령해버린 지금, 상황은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결코 나아졌다 말하기 어렵다. '도파밍'이란 용어가 생길 정도다. 기업은 어떻게든 소비자의 시간을 자신들의 플랫폼에 붙잡기만 하면 돈을 번다. 이용자의 정신건강이나 뇌발달은 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며 학생 스스로 자기를 통제하고 시간을 지켜가며 이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이다.

  둘째로 정서 발달에 좋지 않다. 조너선 하이트는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정신건강이 심하게 나빠진 이른바 '불안세대'라 부른다. 그 원인으로 '현실세계에서는 아이를 과잉보호하고, 온라인세계에서는 아이를 과소보호하는' 어른들의 잘못된 태도를 꼽는다. 실제 미국 10대 여성의 우울증과 불안증세, 자해와 자살 통계는 2010년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늘어났다. 도대체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데이터가 나왔을까? 저자는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를 문제로 지적한다. '놀이 기반 아동기'를 보낸 아이들보다 소통능력, 사회성이 떨어지고 스마트폰 중독을 보이는 경우도 더 많아진 것이다. 결국 저자는 아이들이 일정 나이가 된 후에 인터넷 세상을 만날 수 있게 강력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실제 우리집은 그런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인 나의 자녀들은 내가 고등학생 때 썼던 폴더폰을 쓰고 있다. 스마트폰은 수능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사줄 예정이다. 이런 강력한 규제가 우리집에 있는 이유는 교사인 내가 최근 15년 동안 학생들이 많이 생각보다 많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는걸 매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더 허용하게 놔두는 행위는 아동 학대-방임과 같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놀이 공원에 놀러갔다고 해보자. 정말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기구들인데, 탑승객의 20% 가량이 사고를 당한다는 통계가 있다고 하자. 이 놀이기구에 자녀를 태울 보호자가 있을까? 교사가 옆에서 지도하면 괜찮으니 타도 되는걸까? 이걸 타겠다고 달려드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는 어른이 있을까? 없다. 셋 다 없어야 한다. 이제 스마트폰은 아이들의 두뇌발달, 정서발달에 악영향을 끼치는 수준을 넘었다. 각종 범죄나 도박의 덫이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모든 아동이 쓸 수 있게 그냥 둔다면 오히려 아동 학대-방임에 해당할지 모른다. 아무리 그게 아이가 원하고 아이를 위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100년 전 아프던 아이의 보호자도 정말 그 아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 감기약을 먹였을 것이다.

  나는 학생이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 핸드폰을 소지하는 것은 찬성한다. 그럼에도 학교 일과 시간에는 계속 꺼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스마트폰을 사야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보호자와 연락할 때, 친구와 약속을 잡고 싶을 때도 일반 전화나 문자로도 충분하다. 스마트폰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나이가 된 뒤에 써도 늦지 않다. 투표에도, 운전에도, 심지어 놀이기구 탑승에도 제한이 있다. 스마트폰이라고 개인의 선택을 100% 보장해야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담배도, 라듐도 초반에는 다 좋고 괜찮은 것이라며 광고를 했고 유행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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