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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장감수성 Dec 06. 2024

떨어지는 교권에는 날개가 없다-4

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일기

"선생님, 저는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요?"


  축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일까? 11명의 선수가 한 팀이 되어 공을 발로 차서 골대에 많이 넣으면 이기는 경기 정도?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있고, 비교적 간단한(?) 규칙, 골이 들어갔을 때의 짜릿함덕에 축구는 전세계가 사랑하는 스포츠다. 재밌는 축구를 보고 싶으면 뛰어난 선수와 훌륭한 잔디 그리고 수준 높은 심판이 필요하다. 

  2002년 월드컵 최고의 경기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16강 이탈리아전이다. 페널티킥을 놓치고 선제골을 먹어 끌려가던 대한민국은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과 연장전 종료 3분을 남기고 페널티킥을 놓쳤던 안정환의 그림같은 헤딩골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승리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기억으로 이 경기를 추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심판의 판정에 불만이 많았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축구를 팔꿈치로 하는 희안한 경기방식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카드가 나올거라 생각했던 장면에서 카드나 나오지 않고, 최소한 불러다 주의는 주겠지 하는 장면은 그냥 넘어갔다. 이런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 우리 선수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씨름과 태권도의 전통을 활용한 한국식 축구로 반격하여 맞대응을 해야 할까? 아니면 끝까지 규칙을 지키며 스포츠맨쉽을 유지해야 할까? 

  둘 다 '아니오'다. 그럼 정답은? 정답은 '심판이 잘해야 한다.'이다. 경기를 보는 관중들이,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극단의 양자택일을 강요받기 전에 심판이 팔꿈치를 마음껏 휘두르지 못하게-격투기선수가 아닌 축구선수들이므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판이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카드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축구는 점점 축구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될 것이다. 공중볼 경합을 한 번 하고 내려오면 피가 튄다. 태클 한 번에 한 명 씩 실려 나간다. 상대가 전반에만 다섯 골을 넣었다면? 우리는 상대팀 선수 다섯 명을 내보내면 된다. 이쯤 되면 축구가 아닌 집단 격투다. 한 술 더떠서 어떤 선수가 럭비처럼 두 손으로 공을 움켜쥐고 냅다 상대 진영으로 돌진하여 터치다운~!! 해버렸는데 득점으로 심판이 인정한다면? 손이나 팔꿈치를 쓰지 않고 발이나 머리로 공을 차며 규칙을 준수하여 골을 넣으려는 바보(?)가 남아 있을까? 없다. 

  2024년 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실 속 아이들은 '바보'를 강요받고 있다. 누가 강요하는가? 바로 팔꿈치를 휘둘러대는 '이단아'들이다. 실제 축구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팔꿈치로 상대 코를 부러뜨리고 떨어진 공을 럭비처럼 주워서 터치다운을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레드카드는 물론이고, 경기가 끝난 뒤 징계도 따라 올 것이다. 소속팀에서는 방출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실이면 다르다. 마음껏 팔꿈치를 휘두르고, 얼굴에 침을 뱉고, 공을 손으로 잡아 골을 넣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오히려 규칙을 지키고, 교사의 정당한 지시에 따르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학생들만 '바보'가 된다. 


  1학년 담임을 맡으며 가장 견디기 어려운 민원은 이것이었다.

"선생님, A학생이 저희 자녀의 뺨을 손으로 때렸습니다. 지도부탁드립니다."

일단 진상파악부터 한다. 이런 제기랄. 진짜였다. A학생은 가만히 있는데, B학생이 와서 그냥 뺨을 때렸다. 짝소리가 날만큼 세게. 담임교사인 나는, 16년 경력에 생활부장만 5년 넘게 한 나는, B학생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불러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그러면 안 되는거라 타이르고, A학생에게 사과시킨 뒤,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다짐하는 게 전부다. B학생은 다음 번에 A학생에게 젠가를 던졌다. 같은 일을 반복한다. 불러다 물어보고 안된다 타이른 뒤 사과시킨다. 이번엔 A학생의 의자와 얼굴에 침을 발랐다. 침을 손에 묻힌 뒤 그 손으로 간접접촉을 한 게 아니다. 혀와 의자가, 혀와 볼이 다이렉트로 만났다. 이쯤 되면 A학생이 나에게 따진다. 

"선생님, 저는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요?"

A학생 보호자와 소통도 했다. 생활교육위원회나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언급하며 징계절차도 협박을 섞어가며 말해줬다. 백약이 무효하다. 집에서도 포기했다. 하지만 매일 학교는 꾸역꾸역 나온다. 20명의 학생 중 18명이 근처에 가기조차 꺼린다. 몇몇 학생들은 자력구제를 시작했다. 1대 맞으면 3대 때리고, 침을 뭍이면 발로 찬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도 학생의 필살기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그냥 맞고만 있어요?"

  이건 축구로 치면 선수들끼리 그 때 그 때 규칙을 정해가며 시합을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축구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심판의 판정에 모두가 예외없이 따르며 정해진 규칙에 따라 공을 차는 시합을 보고 싶기에. 규칙을 어긴 선수는 명확한 제재와 불이익이 따르기에 판정을 따른다. 심판이 호각을 불고, 선수를 불러다 주의를 주고, 심하면 카드를 통해 경고를 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그게 바로 모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실에는 규칙만 있고 심판이 없다. 심판이 있어도 호각이 없다. 호각이 있지만 불어도 소리가 나질 않는다. 소리가 나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심판의 호각을 무시하고 멋대로 팔꿈치를 휘둘러 축구를 망치는 '이단아'를 막을 방법도, 사람도 없다. 규칙에 따르는 '바보'학생들만 매일매일 팔꿈치에 맞으러 학교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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