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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장감수성 Nov 23. 2024

라떼 우리 학교는-6

국민학교 다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현직 교사 이야기 

 "00초등학교 학생 모두 명찰을 착용하게 합시다."

교무회의(학교차지조례에서 말하는 교무회의가 아니었다)에서 교장이 의견을 냈다. 우리가 모임에서 여행을 가거나 단체로 박물관에 갈 때 흔히 볼 수 있는 파란 줄에 손바닥만한 이름표가 적힌 명찰을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생이 착용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선생님들이 학생을 부를 때 야야거리지 말고 이름을 불렀으면 좋겠다나. 하지만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질문이 바로 뒤따를 수 밖에.

  "그럼, 멀리 있는 학생을 부를 때는 어떻게 부르지요?"

그렇다. 이름을 부르기 위해 명찰을 차고 있지만 이름을 모르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명찰에 적힌 이름이 보이지 않는 명찰 찬 아이를 부를 때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니, 그야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일단 부르고, 가까이 오면 명찰 보고 이름을 불러주면 되지요."

교장의 답이다. 하지만 이 또한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다음 질문이 바로 꼬리를 물고 나올 수 밖에.

  "그럼, 그냥 부른 다음에 이름을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너무나도 합리적인(?)이 질문에 교장은 아무 답을 하지 못했고, 일주일 뒤 00초등학교 학생은 전원 목에 명찰을 걸고 다녔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새로운 문제들을 불러왔으니......

문제1. 귀찮다고 명찰을 차지 않는 학생이 있다.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의아할 수 있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교장이 급식실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급식먹으러 오는 전교생을 보며 명찰이 없는 아이에게 너는 왜 명찰이 없냐고 묻고, 해당 담임을 불러 지적질을 해댔으니. 

문제2. 쉬는 시간에 뛰어 놀던 아이들이 서로의 명찰을 잡는다. 

마구 달리던 아이의 명찰을 갑자기 누가 홱 잡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잡힌 아이는 덫에 걸린 사람마냥 무력해진다. 가끔 달리는 아이가 힘이 세면 그대로 명찰이 끊어지기도 한다. 부서지고 없어진 명찰의 수리와 관리는 모두 담임교사의 몫이다.

문제3. 겉옷을 입으면서 어차피 명찰에 적은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여름(초등학생은 5월부터 10월까지 여름이다.)에서는 주로 반팔 하나만 입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명찰은 교복이랑 비슷한 역할을 한다. 명찰찬 아이가 보이면 적어도 우리 학교 학생이란 뜻. 하지만 겉옷이 출동하면 어떨까? 어차피 안 보인다, 명찰에 적은 이름은. 

이 모든 문제를 명찰 구입 전 교직원 회의에서 말했고, 대다수 교사들이 이에 동의했지만 누구도 교장의 뜻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교장 기차가 출발하면 선로위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서있어도 소용이 없다. 그 끝이 막다른 길이라 해도 기차는 일단 가서 부딪히고 본다. 왜 교장만 되면 다들 브레이크는 사라지고 악셀만 남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는 2024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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